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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Feb 02. 2024

우리가 잃어가는 소중한 것들

목요일 오후 5시 30분.

직장인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주말을 하루 앞둔 시각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어머니라는 세 글자가 점멸한다.

느슨해져 있던 혈관이 일순간 팽팽해져 머리에 피가 쏠리는 기분이다.


"아버지가 일어서지도 못하고 병원에 가려하니 내가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엄마는 거의 우다시피 말을 쏟아내시면서도 좀처럼 내가 말할 틈을 주지 않으셨다.

나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목소리 톤을 높여 한마디 했다.


"빨리 119  불러서 병원으로 가세요. 나도 바로 출발할게요."


내가 말하는 중에도 엄마는 쉬지 않고 아버지의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읊조리신다.

귀가 어두운 엄마는 남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어서 듣는 것을 포기하신 듯하다. 그래서 아예 당신의 말하기에만 몰두하시는 것 같다.

보청기를 해드리겠다는 것도 한사코 거부하시는 모습이 외할머니와 판박이다.


어둠이 내리는 퇴근길의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대구를 빠져나오자 그런대로 속도가 붙었다.

청도에서 제일 큰 종합병원인 ㄷ병원의 응급실 앞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버지가 홀로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고 계셨다.

어머니는 옆 침대에 걸터앉아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반기셨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기본적인 검사는 했는데 염증수치가 좀 높은 것  말고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폐 엑스레이 사진에 염증이 약간 있어 보여 확실한 것은 CT를 찍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바로 CT 촬영을 하자고 했다.


CT 촬영을 해도 폐렴에 대한 확실한 진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노인들의 주요한 사망 원인이 폐렴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나는 오래전에 부모님께 폐렴예방 접종을 해드린 기억이 났다.

그래도 확실히 완치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입원을 권유했지만 한사코 거절하셨다. 막무가내로 집에 가자는 말만 하셨다.


항생제 주사를 맞고 처방전을 받아서 본가로 모셔다 드렸다.

나는 본가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께 밤중에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119를 부르라고 거듭 당부를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튿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본가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가 잘 걸으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키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또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콧물도 많이 흘리고 가래도 심해서 병원에

다시 가봐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시라며 형식적인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바로 전사장실에 불려 가 어이없는 갑질을 당하고 온  마음이 불편한 와중에 어머니께 너무 무심하게 대답해 버렸다.


작업 현장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다 아버지의 외래 진료 결과가 궁금해 스마트 폰을 꺼냈다.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응답이 없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집으로 가셨나 해서 집으로도 걸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급기야는 병원 원무과로 전화를 걸었다. 진료 중이라는 답을 듣고 진료가 끝나면 전화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잠시 후 원무과 직원에게 부모님이 이미 집으로 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서야 나는 집전화로 집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할 수 있었다.

나는 왜 전화가 안되냐며 화를 내고야 말았다.


"진동으로 해놔서 몰랐다".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과 의사의 입원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그것도 더 큰 병원에 간다는 핑계로-집으로 돌아오셨다.


나는 이제 어제처럼 애타게 아버지를 설득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냥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할 생각이다.

아버지가 입원하지 않으시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119를 부를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이런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늙으신 말 안 통하는 불통(不通)의 아버지는 예전에 내가  알던 그 아버지가 아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젊은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그리고 착하고 순수하던 온순한 아들도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님께 순종하고 가족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던 장남의 모습은 이제 내게 남아 있지 않다.

내게서 사라져 가는 모든 소중한 것들, 그리운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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