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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Apr 20. 2024

아버지를 위한 잔디밭

지금껏 살아오면서 부모님께 특별히 효도라고는 해 드리지 못한 것 같아 항상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오히려 성질머리를 못 다스리고 화내고 삐딱선 타는 성격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날이 더 많았음을 사죄드린다.


그렇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지 않은가?

부산에 계신 부모님을 청도로 모셔온 게 지난 2021년이었으니 이제 부모님도 거의 청도 사람이  되셨다.

아버지는 여전히 부산에 대한 향수로 일 년에 몇 번씩은 새마을금고를 핑계로 혼자 부산 여행을 다녀오신다.


3년 전 청도로 본가를 옮기면서 어머니는 텃밭이라는 소일거리가 생기고 노인일자리까지 덤으로 얻어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나도 매주 본가의 부모님을 찾아뵐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덜었다.


처음 내가 청도에 터를 잡은 계기는 대구에서 가까운 주말 농장을 찾으면서였다.

대구에서 자동차로 5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청도에 주말 농장이 생기고 농막도 있으니 내가 조금 바쁘게 움직이면 사시사철 먹을거리는 풍족하다.


처음 400평이 넘는 텃밭을 구입했을 때 나는 농사의 목적  말고도 나만의 다른 목적이 있었다.

이별은 슬프지만 언젠가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를 대비해서 가족 묘지를 하나 마련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원묘지나 납골당도 있지만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늘 손쉽게 찾아올 수 있는 추모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변변한 선산이나 가족 묘지  하나 없는 집안 사정을 알기에 나의 선택은 주저함이 없었다.

두 분 부모님의 연세도 팔순을 훌쩍 넘어서 이제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작년 가을에 형제 누이와 상의하여 합의를 보고 가족자연장지 신청을 위해  99제곱미터(30평)의 땅을 측량하고 설계사무소에  개발행위 농지전용의 용역을 맡기고 허가를 받았다.

밭의 30평을 묘지로 지목을 변경하고 지난 주말에 잔디 심기를 마치고 마지막  절차인   준공신청을 했다.


몇 년 전 장모님을 수목장* 모신 후에 부모님도 수목장으로 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목장은 평장묘와 더불어 자연장의 개념으로

고인의 유골을 땅속에 묻는 것이 아니라 분해되는 나무 함에 모셔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친화적인 장례 문화이다.

또한 봉분이 있는 묘와는 달리 공원 같은 느낌의 추모공간이라서 타인들에게 거부감이 덜한 이점도 있다.


오늘 오후 처마밑에서 비 내리는 잔디밭을 보았다.

이제 아버지가 편히 쉴 자리는 마련해 두었으니 자식 된 도리 한 가지는 해냈다.


* 수목장(樹木葬)은 입지가 좋은 곳에 나무를 심어 가꾸고 그 뿌리 부분에 화장한 고인의 뼛가루를 묻는 방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조성된 나무에는 시설물 설치가 가능하지 않으며, 고인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패를 나뭇가지에 걸어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나무밑에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낼 수 없으므로 대부분의 수목장에서는 수목장 입구에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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