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2024 부모님 전상서
03화
실행
신고
라이킷
21
댓글
4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석담
Aug 04. 2024
어머니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다들 지쳐간다.
주말농장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보면서 농부의 게으름을 부끄러워 하기보다는 날씨 탓을 하고 있다.
농막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고추밭에서 빨간 고추를 따는 엄마를 보고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어제 분명히 오늘은 너무 더워서 고추 수확은 다음 주로 미루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내 공약
(空約)
은 아랑곳하지 않고 밭으로 오신 어머니가 야속했다.
엄마는 올해 여든셋의 노인이다.
농사일에 너무 진심인 어머니 때문에 여러 번 화를 내셨다. 당신의 몸은 돌보는 일 없이 농사에 몰두하시는 어머니가 항상 걱정이었다.
무리하게 농사일을 하신 후에는 꼭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불편하다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주말농장을 만든 걸 후회했다.
집에서 혼자 우울해하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소일거리라도 하시라고 시작한 주말농장에 어머니는 농부가 되어 버렸다.
고지불통의 아버지 때문에 항상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는 스트레스 해소의 공간으로 밭에 오시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다.
평생을 직장인으로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일은 삶의 활력소이자 돌파 구였는 지도 모른다.
나는 서둘러 어머니의 수확물인 고추 자루를 차에 싣고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다시는 밭에 오시지 마라고 엄포도 놓았다.
엄마는 시골 빈농의 맏딸로 태어났다.
여러 명의 외삼촌 때문에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고 겨우 이름 석자 밖에 쓰지 못한다.
그래도 가족들과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어머니는 내게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분이시다.
나는 아직 그런 어머니가 곁에 있어서 좋다.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이 행복한 순간을 좀 더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아버지는 얼마 전 당신께서 원하셔서 보청기를 해드렸다. 어머니가 보청기가 더 필요해 보이는데 어머니는 한사코 보청기를 하지 않으신단다.
가끔 딸아이가 할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데 어머니가 말귀를 잘못 알아 들이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나도 어머니와 대화를 하다 보면 의사소통이 안돼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어머니가 얼마나 답답할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언젠가 본가의 식사시간에 어머니가 음식을 장만하면서 맨손으로 만지는 걸 본 아내가 어머니께 젓가락을 사용하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알았다고 말하면서 당황스러워하셨다.
평생을 몸에 익은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어렵다.
나는 우리 자식들이 부모님을 이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위생도 중요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노력이 우선 되었으면 좋겠다.
keyword
어머니
주말농장
고추
Brunch Book
2024 부모님 전상서
01
우리가 잃어가는 소중한 것들
02
아버지를 위한 잔디밭
03
어머니
04
아부지, 나의 아버지
05
아버지의 자리
2024 부모님 전상서
석담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10화)
석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직업
회사원
일하며 농사짓는 도시농부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사람의 향기를 찾아 산에 올라요.
구독자
205
구독
이전 02화
아버지를 위한 잔디밭
아부지, 나의 아버지
다음 04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