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법이다

by 석담

중소기업 월급쟁이 생활을 하면서 나는 프랑스 절대 왕권의 상징인 "짐이 곧 국가다"라는 의미를 자주 떠올렸다.

만원 짜리 지출결의서 한 장도 사장의 결제를 받아야 하고 부장인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전결권은 없었다.

관리 부서를 맡고 있으니 사장은 나를 호출하기 위해 유난히 인터폰을 즐겨 사용한다.

작업장의 공장장을 부를 때도, 복사를 지시할 때도, 등기부 등본 한 장 떼는 것도 인터폰을 이용해 시킨다.

그래서 직원들은 나를 "잡부(雜夫)"라고 비아냥 거렸다.


회사 생활 하면서 중소기업의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소기업의 오너는 생산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비용의 지출에 인색하다.

비근한 예로, 안전이나 보건과 관련된 시설이나 환경 관련 설비를 법률에 정해진 대로 설치하거나 운영하지 않고 편법과 눈가림식의 비정상적인 가동을 하고 단속에 걸리면 담당 공무원에게 세금은 그렇게 많이 걷어 가면서 규제를 하고 단속을 한다며 화를 낸다.

궁극에는 관리를 잘못해서 그렇다며 관리자에게 책임을 지운다.


이런 경우가 관리부 직원인 나에게 최대의 딜레마이다. 대표의 지시를 따르면서 단속에 걸리지 않게 공장을 잘 관리해야 하니 말이다.

대표의 지시를 따르면 법 위반이라는 걸 알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바른 소리도 할 수 없고 내부 고발자가 될 수도 없다. 그저 나는 예스맨이 되어야 했다.

어느 틈엔가 편법에 익숙하고 임기응변에 능한 관리자가 되어 있었다.


임금의 포괄임금제가 도입되면서 근로자들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도 비일 비재하다.

특히 잘 아는 노무사와 손잡고 자행하는 불합리한 임금 체계는 직원들에게 대항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사무실 직원들은 매일 번갈아 가면서 두 시간의 당직을 선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연장 수당은 없다.

포괄 임금제라 연장 수당이 급여에 포함되었단다.


연차에 대한 이야기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1년 동안 3개 이상의 연차를 써 본 적이 없다.

어떤 해에는 한 개도 쓰지 않은 적도 있다.

그래서 연말에는 연차 수당이 두둑하다.

신년 초에 사장은 올해부터 연차 수당을 줄 수 없으니 꼭 연차를 쓰라는 입에 발린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연차휴가를 쓰기가 쉽지 않다. 결근계 결재받기도 부담스럽고 연차 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시시콜콜하게 시비를 거는 사장의 행태가 싫다.


언젠가 장모님의 장례식 때문에 4일을 쉬었는데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사장은 위로의 말은 고사하고 4일이나 쉬고 와서 왜 그렇게 비실거리냐고 나무랐다.

장례식이 쉬는 것이라는 그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노동법에서는 직원들에게 사주의 사적인 업무를 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무실에 근무하는 다수의 직원은 사적인 영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곤 한다.

오래전에 근무했던 납품기사는 사장의 문중 선산에서 벌초까지 했다는 참담한 소식도 들었다.


중소기업의 오너는 바뀌어야 한다.

"내가 낸데"하는 비뚤어진 인성으로 갑질을 일삼고

직원들을 아끼고 사랑하지는 못할 망정 노예처럼 부리고

월급만 주면 된다는 잘못된 사고를 근복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사업 수완이 뛰어나고 많은 매출 실적만 올리면 성공한 사업가라는 시대는 지났다.


중소기업 사장의 말이 법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직원이 중심이 되는 중소기업이, 노동자가 살 맛난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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