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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회사는 있어도 좋은사장은 없다
08화
사장이 돈을 주면 마음이 흔들려요
by
석담
Jun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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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고 이사를 네 번쯤 다녔다.
월급쟁이의 큰 보람의 하나는 돈을 모아 조금씩 큰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원하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이라도 된다면 로또 맞는 기분일 것이다.
자동차 부품회사에 다닐 때 둘째 딸의 돌잔치를 했었다.
요즘에는 집들이나 하거나 집에 초대를 하는 일들이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모임은 집안의 잔치에 속했다.
큰 딸 돌잔치를 집에서 치른 경험이 있기에 회사 동료들을 초대해 놓고 별로 긴장은 하지 않았다.
아내와 장모님이 음식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신 덕에 나는 크게 힘든 게 없었다. 그래도 회사 분들이 오신다는 생각에 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든 양주까지 몇 병 준비했었다.
그리고 즐거운 모임을 하고 깔끔하게 마치고 다들 귀가하셨다.
돌잔치를 겸한 행사라 이사님부터 각 부서장들이 팔찌며 돌반지를 돌선물로 잔뜩 챙겨 오셨다.
그 행사가 집에서 직장의 동료들을 초대하는 마지막 모임이라 생각했었고 사회의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의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퇴근 준비를 하는 내게 사장님이 '김 과장 집에 한번 가자'며 친하게 지내는 동종업계 사장님과 내 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나는 순간 많이 당황했지만 퇴근 전인 아내에게 전화해 사장님 모시고 집으로 갈 거라고 미리 이야기해 두었다.
그리고 음식도 몇 개 배달해 놓으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내 부탁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술상을 준비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술은 아파트 입구에서 사 왔는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안주가 될 만한 것이 없었다.
배달 음식은 아직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앞에서 머뭇 거리고 있으니 사장님은 안주 필요 없다시며 마른 멸치에 고추장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잠시 후에 아내가 도착하고 음식도 준비되어 무사히 그날의 방문을 방어할 수 있었다.
돌아가시면서 아내에게 봉투를 주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 지기는 했지만 갑작스러운 방문을 친근감의 표시로만 이해하기 힘든 하루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파트 생활을 마감하고 수익형 원룸 건물을 매수하여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날은 부서장 회식이 있었다.
부서장들과 상무님, 그리고 사장님과 모여 회사 근처의 돼지갈비 집에서 회식을 가졌다.
모두들 술이 어지간히 취한 파장 무렵이었다. 갑자기 화제는 내가 원룸 건물을 매수한 이야기로 넘어갔고 우리 집으로 가보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는 다시 아내에게 전화해서 술상을 준비하라고 이야기하고 사장님이 즐겨 드시는 매실주도 꼭 사라고 덧붙었다.
우리 집은 졸지에 취객들의 2차 장소가 되었고 낯선 이들의 방문에 반려견 해피는 밤새 짖었다.
사장님은 그날도 아내에게 갑작스러운 집들이 방문이 미안하다며 봉투를 쥐어 주셨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집 근처의 노래방에서 3차가 이어졌고 술이 취한 몇몇 부서장은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술의 향연은 사장님의 별장으로 옮겨져서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하루였다.
사장님을 비롯한 각 부서장은 다음날 정상출근 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없었다.
사장님은 나이가 드셨고 이제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5년 전이었다.
아파트 청약에서 운 좋게 내가 당첨이 되었다.
아내와 같이 청약 신청을 했는 데 나만 당첨이 되었다. 오매불망 입주만 기다리다 2년 전 입주를 했다.
이사를 위해 사장님께 연차 결재를 받는 바람에 사장님도 나의 이사 사실을 아시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사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사장실로 갔더니 봉투에 거금을 담아 이사 축하한다 시며 내게 건네주셨다. 거금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 사장님께 이런 면이 있었나 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리고 연말 정산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 경리과장이 내게 오더니 귓속말로 사장님께 받은 돈 연말정산 해야 한다고 속삭였다. 나는 무덤덤하게 그러라고 이야기했다.
연말 정산이 끝나고 원천징수 영수증을 받아 든 나는 기분이 갑자기 나빠졌다. 100만 원 넘는 돈을 다시 뱉어 내게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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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좋은회사는 있어도 좋은사장은 없다
06
뇌종양으로 떠나야 했던 자동차 부품회사
07
중소기업은 멀티를 원한다.
08
사장이 돈을 주면 마음이 흔들려요
09
중소기업이 법이다
10
세무조사
좋은회사는 있어도 좋은사장은 없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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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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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농사짓는 도시농부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사람의 향기를 찾아 산에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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