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멀티를 원한다.

by 석담

처음 5촌 아저씨의 유공압부품 제조업체에 입사했을 때 무역부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해외영업의 기초부터 배우며 잔뼈가 굵었으니 내 직업의 전공은 무역이라고 해야 맞다.

두 번째 직장에서도 없던 무역부를 만들어 혼자 중동에 시장 개척을 해가며 40억 불의 수출을 하는 성과도 이루었다.

내 전공이 무색 해지기 시작한 것은 자동차 업체에서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자동차 쪽의 수출 업무 자체가 신규 개척 해외영업이라기보다는 개발영업에 의한 업체 발굴과 기존 거래처의 오더를 관리하는 납품, 그리고 그에 따른 선적서류 작성, 사후관리 쪽이라 그동안 해왔던 나의 업무와는 사뭇 달랐다.

입사하면서 작업자 관리와 자재 관리의 보직을 받은 터라 나는 한동안 해외 영업과 동떨어진 일을 했었다.


그것도 잠시, 나는 병마와 싸우느라 수개월간 쉬고 난 후 마흔이 되면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 9월 나는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우리 회사에는 해외 영업 부서가 없었는데 내가 무역부서를 만들어 첫 시작을 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캐나다 거래선과 계약이 성사되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수출의 성과를 이뤄냈다.


우리 회사는 인쇄하는 업체라 바이어의 품질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주관적이었고 그게 큰 걸림돌이 되었다.

2년간의 거래를 마칠 즈음 거래선이 폐업하는 난감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 후 특별히 정해진 업무가 없던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관리 업무가 내게 배정되었고 그게 여태껏 계속되고 있다.


관리 업무라는 것이 너무나 포괄적 이어서 생산 실적을 관리하는 업무, 현장을 관리하는 업무, 직원을 관리하는 업무, 거기에 오너 보좌까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모든 잘못된 일에 대한 비난은 관리를 잘못해서 그렇다고 귀결되었다.

그래서 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인사, 자재, 총무, 재무 등 어느 것 하나 내가 관여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18년의 세월을 지금의 회사를 관리하며 사장의 수행비서로 살아왔다.

나는 한동안 내 직무가 무엇인지 정체성의 혼돈을 겪으면서 중소기업에서는 그런 것은 무의미하고 1인 다역의 멀티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국내 영업이나 기술직 같이 정해진 업무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업무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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