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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석담
Sep 22. 2023
나도 새 차를 타고 싶다
1997년 4월 27일 우리 부부는 결혼했다.
아내가 이전부터 몰던 오래된 수동기어의 프라이드는 자연스럽게 나의 출퇴근용 차가 되었다.
옮긴 직장에서 상무가 타는 카니발 중고차를 천만 원을 주고 샀다.
아내는 다시 프라이드를 몰았고 나는 카니발을 운전했다.
카니발은 항상 말썽을 부렸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정비소에 갔다. 수리비도 수월찮게 들어갔다. 아내는 수리비 들어간 거 다 모으면 차 한 대 사겠다면 비아냥 거렸다.
나는 아내가 타던 프라이드를 동네 아주머니에게 공짜로 주고 SM3를 샀다.
아내는 그 차를 타고 구미에 출퇴근했다.
나는 여전히 고장 난 카니발을 타고 쩔뚝거리며 다녔다.
2009년에 정부에서 귀에 솔깃한 정책을 발표했다.
오래된 경유차를 고가에 매입하고 새 차를 싸게 사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카니발을 처분하고 2009년 연말에 생산된 투싼 새 차를 샀다.
그리고 2010년으로 등록을 했다.
등록을 늦게 하는 이유는 중고차 값이라도 잘 받아 보자는 심산이다.
나는 새로 산 투싼을 아내에게 선물했다.
아내는 SUV는 잘 못한다며 살짝 거부하더니 하루 몰아보고 나서는 너무 편하다며 그 차를 몰고 구미로 매일 출퇴근했다.
나는 아내가 타던 낡은 SM3를 다시 물려받았다.
평소에 자동차는 단순히 이동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탓에 헌 차라도 별 불평 없이 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사고가 났다.
감기약에 취한 나는 사거리에서 앞서가던 그랜저의 뒷 꽁무니를
들이받았다.
내 차의 보닛은 하늘을 향해 종잇장처럼 찌그러졌다.
차 수리비가 300만 원이 넘는다는 이야기에 눈물을 머금고 폐차를 결정했다.
그리고 또 새 차를 샀다. 이번에는 무슨 생각인지 저렴한 외제차를 샀다.
조금 무리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정도쯤이야 하는 배짱으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나는 이번에도 그 새 차를 아내에게 헌납했다.
고속도로 주행 시에는 안전한 차를 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내는 외제차를 타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하이브리드 차량인데 외제차는 확실히 유지비가 부담이 되었다.
나는 서비스 센터를 이용하는 대신에 유지보수비를 아끼려고 인터넷으로 소모품을 구입하고 공임을 주고 교체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아내가 한 번씩 접촉사고를 내는 바람에 판금 도색비용이 엄청나다.
물론 보험처리를 하고 있지만 아내의 보험수가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상태이다.
아내가 외제차를 타는 동안 나는 아내가 타던 10만 킬로미터를 향해 가고 있는 투싼을 받아서 열심히, 또 열심히 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누적
주행
거리가 23만 킬로미터를 넘었다.
우리 부부가 현대 투싼을 15년 가까이 타면서도 잔고장이 한번 없었다는 게 정말 믿기 어렵다.
그전에 카니발이 매달 정비소에 가던 생각을 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투싼을
타는 동안
수리한 적은 사고로 들이 받히거나 차 외부를 부주의로 긁어서
생긴 스크래치 말고는
내부의
기계장치나
전자장치의 고장은 정말 한 번도 없었다.
우리나라가 정말 자동차 강국이 되었다는 생각을 내차를 보면서 다시 하게 되었다.
요즘 사무실에서 3,40대의 젊은 직원들의 자동차 뽐뿌는 정말 놀랍다.
최신 모델의 고급 승용차가 회사 주차장에 가득하다.
나는 문득 프라이드를 끌고 다니던 나의 30대가 떠올랐다.
최소 2000cc 이상의 고가의 차들을 주저하지 않고
지르는 그들의 배짱을 배우고 싶다.
내년이면 내 나이 육십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 새 차를 사면 어쩌면 그게 내 마지막 차가 될 거라는 허무한 생각이 든다.
길게 잡아도 70대 중후반에는 자동차의 운전대를 놓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에 새 차를 사는 것을 포함시켰다.
이제는 아내에게 선물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새 차를 살 것이다.
그리고 그 새 차를 타고 나만의 길을 여유롭게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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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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