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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석담
Nov 21. 2022
부부의 세계
1997년 1월 눈이 펑펑 내리던 차가운 겨울이었다.
그날 시내의 호텔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다.
웃음소리가 유난히 커서 인상 깊었던 그녀와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곁들인 술자리를 가지고 급기야 노래방까지 소위 풀코스를 돌았다.
문제는 집에 가는 와중에 벌어졌다.
노래방을 나와 도로변을 따라 걸었다. 눈이 발목까지 쌓이고 제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오랜만에 내린 풍성한 첫눈에 술기운까지 곁들이니 환상적인 분위기에 한껏 들뜬 최고의 밤이었다.
그때였다.
옆에서 걷던 그녀가 눈길에 미끄러지면 대로에 완전히 드러눕는 지경이 되었다. 내가 긴급히 손을 뻗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는 그 해 4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지금도 아내는 그때의 에피소드를 떠 올리곤 미소 짓곤 한다.
이듬해 4월 첫 딸이 태어났다.
회사 근무 중에 산부인과 병원 원무과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니 아내는 이미 출산을 했었다.
아내와 딸에게 미안했다.
가족이 늘었다. 아내와 나는 맞벌이 부부다.
처음 해 보는 육아에 초보 엄마 아빠는 실수 연발이었다.
밤늦게 수유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는 그 힘든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내와 딸이 잠든 큰방을 빠져나와 작은 방으로 도망쳐 혼자 숙면을 취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 일로 아내와 나는 한동안의 냉전을 겪어야 했다.
2004년 봄날 나는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생사를 넘나 들었다. 나는 수술 합병증으로 매일 39도를 넘는 고열로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아내는 나의 회복을 간절히 기원했지만 보름 정도 예상했던 입원기간이 석 달 가까이 돼 가자 조바심이 나서 안절부절못했다. 급기야 담당의사를 찾아 의국으로 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내는 휠체어에 나를 태우고 의국에 갔다.
아내도 나도 병원의 의국이란 곳에는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우리 신랑 제발 좀 살려 달라'라고 애원했다.
아내의 그 간청 때문이었는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처럼 회복하고 퇴원했다.
비위가 약한 아내가 병원에서 불평 한마디 없이 나의 대소변을 받아낸 것은 부부여서 가능한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
집
거실에는 아내와 나의 웨딩 사진이 거실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이사를 예닐곱 번 정도 했으니 옮겨 다닐 때마다 그 액자를 집 입구 쪽 거실에 정성스레 달아 두었다.
그런데 웨딩 사진 관련한 재밌는 기억이 있다.
이사 온 새 집에 인터넷 설치하시러 오신 기사님이 우리 부부의 웨딩사진을 보시더니 얼굴이 굉장히 낯이 익다는 말씀을 했다. 그래서 알고 봤더니 오래전에 살던 옛날 집에 인터넷 설치하신 분이었다.
주변의 금슬 좋기로 소문난 지인들에게 한 번씩 웨딩 사진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창고에 곱게 모셔 두었다는 부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내와 나의 웨딩사진은 늘 그 자리에 있기를 빌어본다.
얼마 전에 만난 아는 후배가 40대인데 각방을 쓴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너무 이상해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한테 물어보니 의외로 각방 쓰는 부부가 많았다.
50대 이상은 기본으로 각방을 쓰고 40대도 각방 쓰는 친구들이 있었다.
각방의 주된 이유는 배우자가 코를 골거나 편하게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라는데 나는 지금껏 아내와 한 침대에서 한 이불속에서 자고 있다.
물론 등을 맞대고 자긴 하지만...
얼마 전 아내가 공인 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늦게까지 공부하거나 밤을 새우는 일이 종종 있어서 한동안 독방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너무 편하고 좋았다.
그렇지만 아내가 딴 방 가서 자라고 할 때까지 우리 부부의 합방은 계속될 것 같다.
25년을 함께 산 부부에게 계속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게 사랑일 수도 있고 정 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이해가 항상 자리해야 백년해로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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