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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Jan 04. 2024

갑질이 우리 가족의 일이라니

딸아이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써야 할까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펜을 들었다.


여느 날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저녁이었다.

주말을 앞둔 목요일인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길에 올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에 숨은 삼겹살을 프라이팬에 불러내 불춤을 추게 만들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소맥도 만들었다.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갈 무렵 아내가 집에 왔다.

아내와 삼겹살을 나누어 먹으며 희희낙락하다가 문득 큰 딸의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 갔다.

지난 새해 해맞이 모임 때 직장 상사 때문에 힘들어했던 딸아이가 떠올랐다.

아내는 이미 예견이라도 했듯이  딸아이가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나는 순간 목구멍을 넘어가던 소주가 목에 걸린 듯 속이 답답하고 눈앞이 흐려졌다.

의외로 아내는 이미 각오한 듯이 담담하게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딸아이는 작년 12월 초에 첫 출근을 했다.

작년 2월 졸업 후 틈틈이 알바를 하며 취업을 위해 노력한 끝에 우리나라 최고의 S대학 연구원에 취직했다.  우리 부부는 적은 월급에도 경력이 중요하다며 딸애를 다독였다.


딸아이는 의지가 굳고 맏이라서 그런지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게을리했지만 뒤늦게 학업에 전념하여 가고자 했던 대학에 편입을 했다.

해외 교환학생으로 선발 됐었고 토익 성적은 항상 최상위를 유지했다.


딸아이가 서울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는 설렘에 우리 부부는 작년 12월에  차를 운전해 두 번이나 서울을 다녀왔다.

한 번은 딸아이를 처형집에 임시 거처로 데려다주러 갔었고, 두 번째는 방을 얻어 이사까지 해주러 갔었다.

비록 비싼 신축 원룸을 얻어서 경제적인 타격은 컸지만 즐거워하는 딸아이를 보며 안도했다.


출근하고 딸아이가 올리는 카톡을 보고 나는 일말의 불안감이 밀려왔다.

담당 교수가 50대의 올드미스라는 얘기에 문득 떠오르는"히스테리"라는 단어를 애써 외면하며 선입견이라고 치부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가 아니었다.


딸아이가  출근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매일 가족 톡방에는 딸아이의 불평, 불만글이 폭주했다.

모두가 담당 교수에 대한  저격 글이었다.

갑질, 욕설, 무시, 인신공격, 그리고 가스라이팅까지 당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우리 부부는 무너졌다.

명예훼손, 인격모독의 결정판을 보는 듯했다.

딸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꿋꿋하게 견뎌 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빠도 20년 넘게 참고 회사에 다닌다는 말을 결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가 꼭 대기업에 들어갔으면 하고 바랐었다.

저녁을 먹으며 반주 삼아 마신 술에 취기가 올랐다.

나는 용기를 내 보았다.

그래서 딸아이가 근무하던 연구원의 부원장에게 한통의 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올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서 보냈다.

딸애를 위해서 아비로서 무엇인가 해야겠기에 그랬나 보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오만 원 상품권을 응원의 목소리까지 담아 보냈다.

나의 작은 응원으로 딸아이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었다.

나는 믿고 있다.

우리 딸은 잘 이겨 내고 잘 헤쳐 갈 거라고.


그녀가 이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서 묵묵히

자기의 갈 길을 뚜벅뚜벅 거침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기를 빌어본다.

갑질과 가스라이팅에도 굴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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