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담 Jan 26. 2024

돌아가지 못할 그리운 시절, 그리운 이들

근무 중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어지간해서는 근무 중에 전화를 하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니 긴장이 되었다.

역시나 큰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아버지와 동갑인  외삼촌은 오래전부터 거동이 불편해 앉아서만 생활해 오셨다.

마침내 그 고단한 삶을 뒤로하고 세상과의 별을 고한 외삼촌의 명복을 빌었다.


한 달 전쯤 어머니는 외삼촌의 전화를 받으셨다.

재건축으로 새 아파트에 입주하신 외삼촌이 어머니께 손수 전화를 하셔서 시간 내어 놀러 오라는 말씀까지 하셨단다.

그게 외삼촌과 어머니마지막  대화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께 외삼촌댁에 모셔다 드리겠다고,  한번 가시라고 말씀드렸지만 끝내 가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그때 외삼촌을 찾아가지 않으신 걸 자책하셨다.


외사촌  동생에게 연락해 부고장을 받았다.

아내와 퇴근 후 저녁에 같이 조문하기로 했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를 굳이 모시고 가고 싶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장모님의 장례식과  큰어머니의 장지를 다녀오신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힘들어하신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께  내가 진심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전하겠노라 말씀드리고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다.


퇴근 후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종합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낮에 내린 비에 젖은 거리는 을씨년스러운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빈소 앞에서 향을 사르고 잔을 올리는 중에 아내는 이미 눈이 붉어져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절을 하고 외사촌 동생을 위로하며 돌아 나오면서도 아내의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문득 생전의 외삼촌이 떠올랐다.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하셨지만 정이 많았던 외삼촌은 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처음 찾아뵜을 때

아내에게 살갑게 대해 주셨다. 외삼촌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문득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삼촌과 동갑내기이신 아버지를 떠올리자 다가올 아버지와의 이별생각나서  눈가가 붉어졌다.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며 떨쳐 내려 노력했다.

일주일마다 찾아뵙는 아버지는 갈수록 예전의 강인함은 사라지 하루가 다르게 나약하고 힘없는 노인으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집안의 많은 일가 친척분들을 떠나보냈다.

학창 시절 몇 번 뵙지 못했던 큰고모님의 장례식장에서는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방학 때 고모집에 놀러 가서 느꼈던 고모님의 인간미와 따스하고 소중한 기억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몇 해 뒤 집안의 큰 어른이신 큰아버지와의 이별이 있었다. 그때 생전 처음 장지에 따라가서 산소에 안장되시 큰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 엄마처럼 따르던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췌장암으로 입원해 계신 큰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오히려 세상은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아내의 슬픔을 마주하며 나는 왜 아내만큼 슬퍼하지 못하는지 괴로웠다.

그것이 나의 아내에 대한 사랑의 깊이는 아닌지 부끄러웠다.


장모님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생전 처음 입관식을 보았다.  생전 모습처럼 생생하던 장모님의 얼굴에서 느낄 수 없었던 온기를 원망하며 목놓아 울었다.

그리고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되고 기억은 세월을 핑계 삼아  망각의 가면을 덮어 섰다.

나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밥도 잘 먹고 술까지 마셔가며 그럭저럭 또 살아가는 중이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명절에도 시골에 가지 않는다. 추석과 설에 온 가족 일가친척이 시골 촌집에 모여 도란도란, 왁자지껄하던 명절의 추억이 사라졌다.

이제는 고향이 없어진 셈이다.

우리모두는 자기들의 영역에서 그저 그들만의 '리그'에 몰두할 뿐이다.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종일 역 앞에서 기다려 겨우 예매에 성공해

인파 속에 밀려 타고 가던 통일호 열차가 그립다.

큰아버지의 너털웃음과 추위에 시퍼레진 귓불을 따스하게 쓰다듬어 주시던 큰어머니의 포근한 손길이 그립다.















이전 12화 가족사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