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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Oct 16. 2024

응답하라 1985

4. 기자

신입생으로 들떠 있던 봄날, 대자보 게시판에 영자신문사 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해외 펜팔을 오래 했기에 영작-물론, 콩굴리쉬지만-에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정성 들여 지원서를 작성해 마감직전에 영자신문사에 원서를 접수했다.

영자 신문기자가 되면 소정의 원고료와 근로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으니 내게는 큰 매력이었다.


며칠 후 면접날이 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대학축제로 인한 음주로 피곤에 절어 하숙집에서 잠시 쉬다가 면접에 가기로 마음먹었던 나는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 그곳은 전쟁터였다. 온통 진흙으로 가득한 전장에서 병사들이 진흙탕에 엎드려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꿈이었다.

시계를 보니 면접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학생회관의 학생처장실로 달렸다.

마지막 지원자로 보이는 학생이 머리를 긁적이며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잠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학생처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처 직원이 무슨 일로 왔냐고 내게 물었다.

그는 처장실 문을 열고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내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내게도 면접의 기회가 주어졌다.


초로의 교수가 굵은 안경테 너머로 나를 힐끔 보더니 왜 늦었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나를 힐난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부산에서 돈 버느라 고생하시는데 하숙집에서 잠이나 자빠져 자서 되겠나?"

그의 이북 사투리는 내게 낯설었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 면접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더디게 흐르던 시간이 지나고 나는 학생회관 밖으로 나와 담배를 빼 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게시판에 합격자 명단이 붙었다.

85학번은 4명이 합격했는데 그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렇지만 40년 전에 내가 한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한 답을 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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