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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Oct 17. 2024

응답하라 1985

5. 하숙생들

하숙집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여러 가지 부류의 하숙생들이 살았다.

나하고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는 전남 벌교에서 온 재수생인데 우리 대학 학생이 아니고 이웃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 대학과 우리 대학은 항상 경쟁관계라 그 친구와 나의 사이도 그리 원만하지는 못했다.

그는 법학과에 다녔는데 항상 집과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며 공부만 하는 공붓벌레였다.

1년쯤 살다 그 친구가 나가고 그의 고향친구가 왔는데 역시 벌교 출신으로 법학과에 다녔다.


나의 옆방에는 밤무대에서 트롬본을 연주하는 음대생이 살았다.

그는 수업이 끝나면 항상 업소에 가서 트롬본을 연주하고 늦은 밤에야 불그레한 얼굴로 하숙방으로 들어갔다.

어떤 날은 누나라며 야한 의상을 입은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서 한참을 소리 없이 있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런 날에는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벽에 귀를 바싹대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시하곤 했다.


그 음대생이 나간 후에는 작은 체구의 이웃 대학의 복학생이 왔는데 처음부터 내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자주 그의 방에 놀러 갔는데 자기는 광주항쟁 때 진압군으로 참전했다며 그 트라우마가 심하다고 토로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참 불쌍하게 느껴지고 측은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중에 그가 나를 자기 방으로 불러 내서 이불속에 같이 누워서 이런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가 갑자기 입술을 내 귓가에 대더니 뜨거운 바람을 불어대기 시작하며  한 손으로는 내 사타구니를 더듬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소중이를 감싼 채 그의 손을 뿌리치고 기겁해서 내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가 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 그와는 더 이상 상종을 하지 않았다.

진압군으로 참전하면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게는 참 더러운 경험이었다.


나는 하숙집 아저씨와 그의 아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아저씨는 퇴직 후 가끔 낚시를 가고 아들은 지방대를 나와 백수로 지내고 있었다.

나는 하숙집 주인 아들과 가끔 술도 마시고 당구도 쳤다. 주인아주머니가 7년 만에 얻은 아들이라며 항상 내게 자랑했다.


* 사진 :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하숙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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