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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Oct 19. 2024

응답하라 1985

7. 여자동기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었다.

영자 신문사 기자로 캠퍼스를 누비고 짧은 영어실력으로 기사작성하느라 헤매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하숙집 타자기 앞에서 막 기사작성을 시작하려는데 누군가 하숙집 문을 노크했다.

나가보니 학과 여자동기인 L이 불그스레한 얼굴로 내 방을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왜 왔는지도 물어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 순간 내 가슴은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초저녁인데 벌써 많이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낮술을 먹은 듯했다.

그녀는 내 방에서 잠시 쉬어 가겠노라 했다. 나는 기꺼이 그러라고 했다.

그녀는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코까지 골며 잠을 잤다.

나는 이불도 꺼내어 덮어 고 그녀를 지키는 흑기사처럼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그녀를 옆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혹시라도 룸메이트가 오면 어쩌나 하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룸메이트가 오면 여관비를 주고 나가서 자라고 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냥 늑대가 되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학과에서 매일 볼 텐데 그게 무슨 바보짓인가 싶었다.


그녀는 저녁 10시쯤 일어나서 내게 고맙다며 집으로 돌아갔고 룸메이트는 여전히 그때까지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때 사고를 치지 않은 것이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녀를 지키던 그 밤을 떠올리며 마치 알퐁스 도데의 양치기 소년이 된 느낌이 들었다.


* 사진 :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이미지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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