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던가? 그리고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 했다.
그 말들은 모두 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 주말 본가에서 나는 아버지와 관련된 충격적인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듣고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의 왼쪽 눈이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왜 당신께 이런 병이 찾아오는지 하늘도 무심하다며 그 하늘을 원망했다.
앞을 볼 수 없는 그 답답함과 갑갑함에 대해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청도로 오시기 전에 부산에서 아버지는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 나이가 드시고 눈이 침침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과 검진 후에 내린 결정이었다.
수술은 잘 끝난 듯했는 데 한쪽 눈은 여전히 깨끗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주말 청도의 한 안과에서 '각막내피 부전'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며칠 전 다녀가신 청도 소재의 동일한 안과에 확인차 전화를 했다. 원장은 '각막내피 부전'의 해결 방법은 각막이식 밖에 없으며 각막을 기증받기 위해서는
무작정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고 인공 각막은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퇴근 무렵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의 눈 상태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서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 답하고 통화를 끊었다.
문득 학교 때 배운 에세이 '한 눈 없는 어머니'가 생각났다.
마치 내가 그 작가이기도 한 듯 서러웠다.
몇 년 전부터 아버지는 교회를 엄청 열심히 다니셨다.
평소에는 지독히도 씻기 싫어하시던 아버지가 교회 가는 날에는 몸도 정결하게 닦고 머리도 깨끗하게 씻은 후, 제일 단정한 양복을 골라 입고 교회에 가셨다.
부산에서 다니시던 교회를 청도로 이사 온 후에도 청도의 교회에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나가셨다.
그러셨던 아버지의 한쪽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신 것이다.
"하느님, 제발 아버지를 굽어 살피시어 아버지의 시력을 돌려주세요" 놀랍게도 나는 내가 믿지도 않는 그분께 간절한 기도를 마음속으로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믿는 그분께도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나는 알고 있다.
대학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도 아버지의 눈은 다시 예전처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렇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학병원을 예약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나는 아버지께서 한쪽 눈으로라도 불편하지 않게 세상을 사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앞을 못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말로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