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夫婦)와 부자(父子), 그 쉽지 않은 조합
지난 주말 본가에 갔을 때 어머니가 동지 팥죽 먹으러 올 거냐고 물으시길래 그러겠다고 했었다.
어제 퇴근 후 집 앞에서 아내와 두 딸들을 태우고 청도 본가로 향했다. 부모님은 손녀들의 방문에 입이 귀에 걸리셨다.
팥죽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맛난 음식들이 차려지고 우리 가족들은 모두 정신없이 팥죽의 세계에 푹 빠졌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아버지의 미소와 어머니의 수다스러움이 조미료처럼 그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어머니의 수다가 좀 과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결국 아버지의 흑역사를 고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식사를 마치고 간식을 다 먹을 때쯤 그 노여움은 최고조에 달해 마침내 아버지는 그 화를 더는 참지 못하시고 일성과 함께 쏟아 내셨다.
"OO, 지만 잘 났고 나는 항상 못났지"
내가 대충 그 상황을 정리해 보니 어머니가 아버지의 약점을 계속 우리 부부와 손녀들 앞에서 까발리자 아버지가 화가 나신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약점이나 허물이 타인에게 알려지거나 노출되는 걸 싫어하는 본성이 있다.
아버지에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불쾌감과 화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냥 못 들은 척 참아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욕이 섞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내며 아버지에게 한마디 하고 말았다.
"욕을 와합니까? 팔십 묵은 어른이 손녀 앞에서."
거실은 그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셨고 아내는 애들을 데리고 귀가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제 집에 안 올 기라예"
"그래, 오지 마라"
나는 아버지에게 다시 폭탄선언을 했고 아버지도 지지 않고 대꾸를 하셨다. 집으로 오는 내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우리 부자같이 이렇게 데면데면한 아버지와 아들은 본 적이 별로 없다. 항상 아버지는 근엄하고 다가가기가 힘든, 그리고 무서운 존재였다.
팔순을 넘긴 지금에도 아버지의 성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쉽사리 바뀌지는 않겠지만 나는 나이가 들면 달라질 거라고 믿었었다.
어머니에게 문제가 없지 않으나 나는 항상 어머니를 무시하는 듯한 아버지의 태도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부부 사이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부부 사이는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항상 근간에 깔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업신여기거나 깔보는 마음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 존중하지 않으면 사달이 나기 마련이다.
부부에게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필수적이다.
배우자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다면 더 이상 부부일 수 없다.
티브이에서 졸혼이니 황혼이혼이니 하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부부 사이에 존중하는 마음과 배려심이 부족한 탓이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맺어진 사랑이라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부모님의 갈등으로 촉발된 아버지와의 불협화음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시간이 지나면 또 예전처럼 웃으며 찾아뵙고 아무 일 없듯이 웃고 떠들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의 생각과 성격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그 생각을 그만 접기로 했다.
아버지를 바꾸겠다는 내 생각을 바꾸는 게 더 쉬운 길이라는 걸 알았다. 아버지를 억지로 바꿀 이유도 없고 그렇게 달라질 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인정하기로 했다.
좀 불편하고 간혹 충돌은 있겠지만 그것이 아버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또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어색한 부자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