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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May 21. 2022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도 필요하다.

비움과 나눔 전문가 BK의 시선 빌리기.

  ‘미니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바로 떠오르는 지인들이 있다. 비움과 나눔이 아주 자연스럽고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집으로 초대할 수 있을 만큼 집이 깔끔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이 중 나의 오랜 친구 BK는 쌍둥이를 키우면서 미니멀 육아를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다 가벼운 친구이다. 읽은 책도 다 읽고 나면 거의 나눔을 하고, 비싸게 주고 산 옷이더라도 잘 입지 않게 되면 망설이지 않고 비운다. 그렇게 비운 옷 중 몇 벌은 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준 것들도 있다. 나는 그 옷들을 쉽게 비우지 못하는 아이러니. 비움과 나눔이 익숙지 않은 나를 안타까워하며 출국 전 정리를 도우러 왔었다.


  작년 9월, 열심히 비우고 정리해도 끝이 없을 만큼 짐 속에서 허덕이던 그때. BK가 집에 와서 비우는 것을 도와주고 기준 세우기를 도와준 덕분에 정리에 가속도가 붙었다. 물론 BK의 속도에 비하면 꿈틀거리는 수준이어서 차라리 나에게 좀 나갔다 오라고 할 정도였지만. 어쨌든, 주방 수납공간과 옷장 등 굵직한 공간들 먼저 털어내기 시작했다. 언젠가 쓰겠지 하며 모아둔 물건 중 가장 흔하디 흔한 텀블러, 빈 병, 수납용품이 우수수 나왔다. 도토리 모으는 다람쥐처럼 구석구석에 쟁여둔 것들이 많기도 했다. 



  그리고 옷장에서 꺼낸 옷들을 거실에 잔뜩 널어놨다. 내 눈에는 예쁘고 즐겨 입던 옷들이라 버리지 못했던 옷인데 BK의 눈으로 보기에는 보풀이 너무 많이 피었거나 유행이 너무 지난 것이거나 낡은 곳이 많았다. 그런 말을 듣고 나서 다시 보니 최소 5년 이상 입은 옷도 많고, 지금은 맞지 않는 옷도 있었다, 내 눈에도 보풀이나 낡음이 보였지만 살짝 흐린 눈을 뜨고서 그냥 입곤 했던 옷도 있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옷도 막상 바로 입어보니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망설임을 끝내니 100리터 봉투가 순식간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BK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판매와 나눔을 당근 마켓으로만 하느라 좀 지쳐있었다. 그런데 본인도 종종 하는 방법이라며 ‘엘리베이터 나눔’을 알려주었다. 작은 바구니나 상자에 나눔 안내 메시지를 적고 나눔 할 물건을 담아서 넣어두면 생각보다 나눔이 잘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겪어본 적도 없던 것이라 그게 잘 되려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같이 상자에 물건을 담았다. 복직하면 다시 쓰려고 모아둔 학용품, 예쁘고 귀엽다고 모아뒀지만 쓰지 않은 물건 등 각종 의미 부여로 고이 안고 있던 것들도 꺼냈다. 



  정리하면서 복직은 앞으로도 몇 년이나 더 남았고, 그때까지 이 짐을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해외를 나가야 하는 상황에 너무 많은 짐을 남겨두고 가는 것은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 모아둔 물건 중 대부분은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많고, 버리고 난 뒤의 사진을 지금 다시 보니 무슨 물건이었는지 생각도 안 난다. 이렇게 가볍게 잊히고 지금까지도 그 물건이 없어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나는 왜 그렇게 몇 년씩 간직하며 살았을까. 


  BK의 시선으로 나의 공간을 돌아보고 나니 비움이 한결 수월해졌고 내 시선도 조금은 달라졌다. 나의 시선으로만 바라볼 때는 비울 것이 잘 보이지 않던 공간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다시 돌아보니 불필요한 것이 많았다. 종종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내 시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해본다. 특히 BK라면 지금 어떤 것을 비우려고 할까? 무슨 말을 나에게 할까? 그러면 나는 망설임이 덜어진다. BK는 오늘도 뭔가를 비우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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