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는 의미
2022년 5월 중순,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저장강박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로부터 약 100일, 3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이사를 계속했었지만 버리지 못했던 경험과 해외 출국을 계기로 많은 것을 비운 경험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쁘고 피곤하고 귀찮다는 이유 등으로 집안 가득한 짐 속에 파묻혀 살면서 집주인이 아니라 하숙생처럼 살던 날들은 지금 돌이켜봐도 부끄럽다. 그렇게 하나둘 나의 부끄러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써나갔다. 나를 알아가고, 마음을 비우고, 꾸준히 하기 위한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덧 약 30개의 글이 모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비우기를 실천해왔다. 온라인에서는 쓰지 않는 파일, 보지 않을 사진, 정리가 되지 않은 하드, 여기저기 가입된 사이트 등 눈에 보이지 않아서 쉽게 쌓아둔 것을 틈틈이 정리했다. 특히 사진이나 영상은 비슷한 사진도 많고, 막상 찍어두고 보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어느 정도의 기준을 정해두고 정리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금방 훅 늘어나서 하루가 끝나기 전에 그날 찍은 사진과 영상은 다시 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하니 남겨둔 사진과 영상은 더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오프라인에서는 하루 중 가장 많이 있는 공간 중 하나인 부엌 정리에 힘을 쏟았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 가져온 짐에서 최대한 늘리지 않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생활하면서 불편함을 느껴도 바로 무언가를 사지 않았다. 대체할 만한 것을 찾거나 불편함을 조금 참고 지내다가 사지 않고 잘 지나가기도 했다. 이거 없으면 큰일! 라던지 꼭 있어야 해!라는 식의 물건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핑계로 물건을 쉽게 사고 쉽게 버려왔는지 반성하게 됐다. 수납장 속 식기, 냉장고 속 식재료, 식탁 위 식단 등 많은 공간과 물품이 간소해지고 여유로워졌다.
인간관계, 책, 취미, 수집품, 시간 관리 등 나와 나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것도 비우기 위해 노력했다. 몸과 마음도 비우고, 옷과 화장품도 비우고, 육아 핑계로 수시로 사들이던 장난감도 더 늘리지 않았다. 비우거나 늘리지 않아도 내 생활은 변함없이 잘 흘러갔고, 오히려 넘치게 채워나갈 때보다 여유롭고 편안해졌다. 특히 디지털 웰빙이나 명상 등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예전보다 많이 갖게 됐다. 한국에서 지내던 집보다 방의 개수도 수납공간도 집 크기도 다 작아졌지만, 내가 느끼는 집의 크기나 내 마음의 공간은 훨씬 더 넓어졌다.
그동안 워낙 쌓아온 것이 많아서 아직도 비워야 할 길은 많이 남았다. 그렇지만 이제 예전만큼 대책 없이 막막하지 않다.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어떻게 비워야 하는지 등 비움에 관한 나의 기준과 방법이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는 것은 결국은 나를 위한 일이다. 나의 몸과 마음 비움을 시작으로 내 공간이 비워지고, 내 일상이 가벼워지니 하루가 행복과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집안일도 육아도 숨 막히게 느껴지던 날들이 많이 사라졌다. 공간과 그 속에 채워진 것이 여유로우니 정리도 금방 할 수 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하루를 정리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나 자신을 돌아본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해버리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언제든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점점 채워지고 있다. 어디를 돌아봐도 무언가 나를 쫓아오는 것만 같고,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날들도 사라져 간다.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했을 뿐인데, 비워진 자리에 나도 내 가족도 내 공간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워지고 있다. 결국 나를 위한 일이 우리를 위한 일로 되어간다. 그래서일까. 어느 하루 끝, 거실과 부엌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행복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미니멀 라이프를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