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을꾸다 Oct 29. 2022

캐리어와 이민가방 해외 이사, 그 뒤 이야기.

짐 꾸리기와 무게


1년이 지났다. 작년 가을, 공항에서 수하물을 싣는 그 순간까지도 불안하고 초조하고 아쉬웠다. 대형 캐리어 2개, 이민가방 2개로만 남편, 아이, 아이의 짐을 꾸리느라 끙끙 앓느라 잠도 편히 자지 못했다. 짐을 챙기기 위한 나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짐을 챙겨갔는지만 알아보며 어영부영 시간만 날렸다. 어쨌든 짐은 꾸려졌고, 미국에 잘 도착했다.



짐 꾸리기 경험을 돌아보면 대학생 때 한 달 유럽 여행을 떠났었다. 일주일 이상의 장기간 여행은 처음이라 짐을 풀었다가 꾸렸다가 바빴다. 특히나 그때 유럽은 물가가 비싸서 무엇이든 비싸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무엇이든 챙겨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10년이 더 지나서도 여전히 같은 고민을 반복했다. 미국에 오면 다 비쌀 것 같고, 필요한 것을 구하기 힘들 것 같고, 최대한 다 담아가고 싶었다. 여행이 아니라 살기 위해 온다는 게 정말 부담스러웠다.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1년이든 그저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가볍게 떠나도 괜찮았는데 말이다.


엄청난 짐을 이고 지고 살다가 짐 꾸리기 힘들었던 경험 덕분에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은 짐을 늘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애쓴다고 애썼던 1년 동안 우리 산 것을 돌아봤다. 매트리스, 책상, 의자, 프린터, 텔레비전, 빨래건조대, 책장, 장난감 수납장, 청소기, 휴지통, 에어컨, 선풍기 등 생활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사다 보니 가구 및 가전은 제법 늘어났다. 인스턴트팟, 커피머신, 믹서기, 식기세척기 등 주방 살림도 하나둘 생겼다. 큼직한 가구 및 가전, 주방 살림 외에 아이 장난감, 가족 의류, 취미 용품 등 소소한 짐도 쌓이고 있다.


정작 한국에서 소중하게 챙겨 온 짐은 1년 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짐도 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없어도 충분했다. 짐을 챙기던 그 시기의 나는 정말 필요한 짐인지 나의 불안함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짐인지 현명하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만약 당장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망설임과 불안함 없이 다시 짐을 꾸릴 수 있을까. 캐리어와 이민가방에 무엇을 채워서 돌아갈 것인가.


1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에게도 물었다. 남편은 집을 휙 둘러보더니 당장 떠난다고 해도 딱히 챙겨가야 할 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부피가 큰 짐은 부피가 크니까 두고 가고, 주방 살림도 쓸 만큼 쓰고 가면 되고, 아이 책이나 장난감도 나눔 하고, 옷도 당장 필요한 몇 벌만 챙기면 된다. 사실상 챙겨 온 옷도 얼마 되지 않고, 여기서 산 옷도 거의 없다. 이대로 짐을 챙긴다면 여행 가는 마음으로 편안하고 가볍게 떠날 수 있을 듯하다.



이렇게 1년을 지내고 나니, 갖고 싶은 물건은 여전히 많이 생기지만, 이런 기준들로 고민하다가 끝나는 편이다. 장바구니나 관심 리스트에 담아두었다가 완전히 잊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망설임 없이 샀을 물건도 이제는 그 끝을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이 짐을 어디까지 혹은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 물건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지, 이 물건이 없을 때는 어떻게 지냈는지, 내가 가진 것 중에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등.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기다려진다. 가벼운 마음과 그보다 더 가벼워진 가방으로 돌아갈 수 있을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버리지 못하고 남겨둔 짐도 어서 정리하고 비우고 싶어졌다. 


이사와 여행이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가 아니라 여행 가는 기분으로 짐을 꾸려도 어디서든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내 가방의 무게가 인생의 무게, 욕심의 무게라는 표현이 와닿는 1년을 살았다. 가방 무게를 줄여서 떠나왔더니 마음의 무게도 가벼워졌다. 언제 떠나도 괜찮은 일상과 공간은 살아가기에도 괜찮다. 공간이 여유로워지니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떠남도 머무름도 편안해졌다. 여전히 나의 짐과 욕심은 많다. 그러나 해외 이사 1년 살이 후 비우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나날이 비워가며 가벼워지는 내가 좋다.

이전 24화 결국은 나를 위한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