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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Jul 16. 2024

전혀 괜찮지 않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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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길 가던 사람도 붙잡고 자기 하소연을 풀어놓을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다. 내가 여태 본 사람들 중 친화력으로는 엄마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 아마도 한이 너무 많아서, 속에 쌓인 화나 분노가 너무 많아서. 아니면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일거다. 그나마 유일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딸인 나였을 거다. 지금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쪼록 나는 30년도 훌쩍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엄마에게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두 시간씩 듣다 보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지쳐 나가떨어지게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특히 엄마가 아빠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어릴 적에는 엄마 이야기만 듣고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서야 어렵사리 아빠의 이야기를 듣게 된 후, 그건 엄마만의 이야기란 걸 알았다. 그렇게 나는 양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필요성을 깨달았다. 동시에 누군가를 내 편으로 포섭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내 이야기를 과장하게 된다는 것. 사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기 위함이란 것도 저절로 알게 됐다.



나는 엄마처럼 아무한테나 쉽게 내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사실 엄마가 그렇게 하는 게 싫었다. 그런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도 않았고 들어주는 사람도 마지못해 겨우 듣는 척을 할 뿐이었다. 누구도 엄마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거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알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딱히. 필요에 의한 대화가 아니고서야 하지 않았다. 수다라는 것 자체를 엄청난 시간낭비로 여겼다. 구설수에 오르내릴 만큼의 일이 생겨도 이야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편을 선택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사람들이 무슨 오해를 하고 어떤 상상을 하던, 그저 내가 진실되면 그만이란 생각이 언제나 더 강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괘념치 않았다. 하늘이 나를 언제나 알아줄 것이라 믿었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 오로지 나만 아는 이야기, 그리고 수많은 상처들을 까발려봐야 누가 연고나 발라줄까. 이미 상처를 치유하기엔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시간 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로 나는 성장했고, 그렇게 겹겹이 흉터가 쌓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괜찮아졌다고 믿었다. 비록 살점이 제법 두껍고 보기 흉해졌을지라도 다 나았다고. 그저 지난 것은 다 지나간 일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냥 덮어뒀을 뿐 제대로 치유하지 않아 곪거나 덧난 채로 여태껏 치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임신과 입덧을 경험하며 마침내 인지하게 된 거다.



여기저기 상담소를 다녀봤지만 딱히 쏙 마음에 드는 곳은 없었다. 역시 나라 지원 사업이 다 그렇지 싶은 실망과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나마 시설과 거리가 가장 나았던 곳을 선택했다. 그렇게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편과의 관계와 이혼에 대한 시급한 마음 정리가 필요했다. 불난 집에 재빨리 불을 끄듯 다녔고, 상담이 있는 날마다 남편에 대한 불만과 욕을 시원하게 쏟아붓고 왔더니 제법 속이 시원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얘길 해봐야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였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하니 차라리 덜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입덧이 멎었고 나는 다시 영화 '모아나'의 테카가 테피티로 돌아오듯 정상화가 되어가는 듯했다. 출산할 때 즈음 남편과의 관계는 예전만큼 최악은 아니었고 제법 괜찮아져 있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상담이 중단됐다. 둘째 출산 이후에는 산후우울증을 예방하겠다며 보류됐던 잔여 회차를 차감하기 위해 다시 한동안 상담을 다녔다. 둘째를 임신하고부터 출산한 이후까지 그렇게 1년을 좀 못 미치게 상담소에 다녔다.



심리 관련 전공으로 석사까지 공부했다던 1급 심리상담사인 상담소 원장님과의 대화는 사실 그다지 도움 되진 않았다. 이상하게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오히려 들어줘야 하는 날이 잦았다. 이야기 듣느라 하고자 했던 나의 이야기를 모두 다 하지도 못했다. 처음엔 심리상담소에만 찾아가서 나의 이야기를 다 쏟아내면 뭔가 문제의 실타래가 금세 풀릴 줄 알았다. 그 자리에서 전문가가 심리학적인 분석을 해주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꼼꼼히 알려줄 줄 알았다. 내가 현재 어떠한 상태인지, 그래서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명확하게 제시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단순히 전문적인 심리검사를 통해 내가 우울증이 맞았다는 것, 지금 단계가 중등도에 해당한다 것을 확인한 정도였다.


그래도 전혀 모르고 지내던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나쁘진 않았다. 같은 출산을 겪은 여성이자 엄마로서 느끼는 공통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육아와 아이들 얘기로 수다를 떨다 보면 금세 상담시간이 종료됐다. 새롭게 사람을 사귀는 느낌이 좋았다. 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아간 거고 그 사람은 그 비용만큼 들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일 테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함으로써 나 혼자 생각하던 마음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썩 괜찮았다. 특히 남편에게 이야기했을 때에는 남편이 전혀 공감할 줄 모르고 반응해주지 않던 것들을 타인이 대신해서 그 역할을 해줄 때마다 대리만족을 느꼈다. 어쩌다 보니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니면서야, 왜 남자들이 일부러 술집에 가서 술집여자들에게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는지도 새삼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상담으로 내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괜찮아진 것이 아니었다는 걸 몰랐다. 나의 탈진 상태가 저절로 해결된 것이 아니란 것을 몰랐다.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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