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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Sep 25. 2024

우울증이 가져온 새로운 시작, 활활살롱

무에서 유를 만드는 활활살롱 이야기

저는 아주 깊은 우울증을 겪고 난 뒤, 명상과 글쓰기를 통해 치유의 과정에 들어선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두 달 뒤 셋째 아이를 출산할 예정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감처럼 다시 떠오른 것을 실천하기로 결심했고, 1년 넘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 또는 계획을 지난 2024년 7월 세상에 펼쳐 꺼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서 모임이었습니다. 제가 평생 죽을 때까지 지속할 두 가지, 바로 명상과 독서에 관한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지만, 육아를 핑계로 미루고 미뤄왔습니다. 아마도 적절한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순간적인 영감과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로 큰 고민 없이 '활활살롱'을 만들었습니다.

네이밍과 로고는 제가 담고 싶은 의미들을 직접 담아 표현했습니다. 디자인이나 브랜딩 전문가가 아니라서 전문가의 시선에서 보면 어색하거나 어설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로고 하나를 만들기 위해 며칠 동안 수없이 마우스를 클릭했어도 저는 만족했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은 추후에 더 나아질 기회가 생기면 더 좋아지면 좋겠다는 정도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보이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라 해도, 결국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활활살롱: 활자로 활기를 찾는 양육자들의 내면 성장 독서 모임.  

활 活: 살다, 살리다, 구하다, 생기가 있다.

살롱 Salon: 르네상스 시기에 꽃피던 17세기의 문화. 예술인, 문인, 지식인을 응접실에 초대하여 식사나 다과를 제공하며 문화예술, 문학, 철학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 향유하던 핵심 문화 커뮤니티. 궁정에서 시작해 귀족 부인들을 통해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기원은 4~5세기 그리스 아테네 젊은 귀족들의 지적인 문화 모임이었습니다.

Viva Book Salon: 문학을 중심으로 시작한 북살롱의 본질을 놓지 않으려는 활활살롱의 영문명입니다. 문학 외에도 제가 미술, 음악, 춤, 극 등 예술을 사랑하지만 모든 장르를 취할 수는 없으니 메인 장르를 문학으로 정했습니다. 한자 '활'을 영문으로 표기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라틴어로 '살다'를 의미하는 Viva를 붙였습니다.

로고 이미지: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의미를 담고,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밝은 색상인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표현했습니다. 책에서 잎이 자라나는 이미지는 내면의 성장과 치유를 상징했고, 활짝 열린 책에서 빛이나 에너지가 퍼져나가는 이미지를 구현했습니다. 또한 책은 독서 모임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장기적인 목표인 출간을 의미합니다.

제가 저의 삶 안에서 수행의 기초로 삼고 있는 한국전통수련인 국선도에 '구활창생(救活蒼生)'이라는, '하늘 아래 모든 생명체를 구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활(活)은 그것에서 따온 것이며, 문학 또는 책과 연결 지어 '활자로 활기를 얻는다'는 의미를 붙였습니다. 활활살롱은 문학과 명상을 통해 자기 성장과 상호 치유를 실현하는 문화 커뮤니티입니다. 이곳에서 개인은 스스로를 살리고, 또 다른 이들을 도우며 함께 성장합니다. 자기 성장과 치유를 바탕으로, 문학이란 예술과 명상을 매개로 사람들 간의 연결을 통해 상호 돌봄과 활력을 주고받는 공동체. 이것이 바로 활활살롱의 정체성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닐 만큼 깊은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저는, 명상과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 의지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 될 수 있음을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나와 비슷한 또 다른 누군가와 경험을 나누고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명상은 18년간 해오고 있는 수행이었고 국선도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의 수행이 중요하다 배웠기에, 결혼과 육아 이후에 그 삶 안에서 행하려고 애쓰면서 지냈습니다. 물론 매일같이 지속했더라면 다른 차원의 성장이 있었을 테지만, 저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래도 긴 시간 동안 그 끈을 놓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행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독서와 글쓰기는 달랐습니다. 책이야 읽으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어느 책을 읽건 어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건 누구나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책의 힘을 믿는다는 것과 독서의 중요성을 언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한참 해리포터에 흠뻑 빠져 밤을 새 가며 책을 읽고 도서관 가는 것을 즐겨하며, 책을 부둥켜안으며 웃고 울고 하던 저였습니다. 도서관 자료실에서 책을 고르며 느끼는 오래된 책들의 매캐한 냄새가 그저 좋았습니다. 그 안에 있는 시간만큼은 볼품없는 가난한 집 딸내미가 아니라 어느 부잣집 배운 게 많은 딸내미가 된 기분이 들었고, 마치 스스로를 지성인으로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책에서 위로를 받고, 책에서 용기를 얻고, 책을 통해 나의 어둡고 비참한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살 수 있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삶을 지탱할 강력한 힘이 돼준 책이기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책 사는 것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학교나 일을 포함한 여러 자잘한 일상들은 책장에 수북이 책만 쌓여가게 할 뿐 실질적으로 제 마음 안에 어느 문장 하나 제대로 닿게 하는 시간이 없게 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임신과 출산은 의도치 않게 책과 거리 두기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출산 후에 몸조리할 때는 책도 읽으면 안 된다, 그러면 눈이 나빠진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어버렸으니까요. 사실 그 이야기를 믿은 건지, 아니면 이미 책과 상당한 거리가 생겨버린 나를 위한 합리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특히 글쓰기는 눈에 도드라지는 필요성이나 당위성이 제 마음 안에 자리 잡은 게 없었고, 그저 언젠가는 쓰고 싶다,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기록해서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6년 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여러 작가님들의 글쓰기 수업도 들었지만, 수업을 들을 때뿐이었습니다. 지속적인 글쓰기란 전업 작가가 아닌 이상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육아일기도 마찬가지였고요. 처음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기록해 주겠다는 포부로 매일같이 작성하던 일기도 어느 순간부턴가 멀어졌고, 멀어진 다음부터는 모든 기억과 순간들이 그 시간 속에 머물러 끝이 나버렸습니다. 그나마 겨우 끈은 붙잡고 있던 것은 SNS에 나의 육아일상을 매일같이 사진과 짧은 글로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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