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저에게 6년이 지나서야 글쓰기의 당위성이 명확하게 자리 잡은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우울증이었고, 막연하더라도 글을 써서 이 퀘퀘묵은 오랜 감정들을 모두 끄집어내서 적어내려야 만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아주 우연한 계기로 여성학자인 오한숙희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는 그날부터 제가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들의 사소한 기록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육아와 일상은 모성과 본성의 갈등을 직접 겪고 있는 당사자인 우리가 낱낱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 이 기록이 가지는 가치는 현대 우리 사회의 여성사의 일부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저의 사소한 기록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여성사를 남기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것이 글쓰기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 당위성으로 자리 잡았고 즉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고정적인 글쓰기 시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시간 날 때, 생각날 때 끄적이는 정도도 물론 필요했습니다. 그것조차 습관화되지 않으면 글쓰기라는 것이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습관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되고 습관이 된 이후에 지속적인 글쓰기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들 사이에서 나의 글쓰기 시간이 인정되는 것과 내가 그 글쓰기 시간을 고수하는 것이라고요. 오한숙희 작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에 박완서 작가님의 일화를 들려주셨는데, 박완서 작가님의 남편께서, 작가님이 글쓰기를 하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자, 이제 너희 엄마 거짓말 하는 시간이니까 모두들 나가자.'라고 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 같아도 얼마나 절대적으로 그 시간을 고수하셨고, 가족 사이에서도 글쓰기 시간이 어떻게 인정이 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언제 고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뒤 점심시간 전까지, 짧으면 한 시간에서 길면 두 시간. 이 시간만큼은 절대적으로 고수하고 글을 써야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여보, 저 이제 글을 쓸 거니까 이 시간만큼은 뭘 하든 간에 저를 그냥 놔두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컴퓨터 책상에 앉아 혼자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써오던 전업작가도 아니고, 작가의 꿈이나 야망을 대단히 품고 있던 작가지망생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전자책 출판도 흔해지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출판이 점점 쉬워지는 세상이라 그냥 언젠가는 나도 내 우여곡절 많은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고 싶다 정도의 가벼움에 기반한 소망만 가진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쓰기를 한 달간 훈련하듯 했습니다. 어떤 날은 휘리릭 쓰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날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득한데 어디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롯이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그 시간은 그보다 더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 없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수련을 하고 명상을 하는 시간만큼이나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솔직한 글을 쓰고 나면 신기하게도 감정에 환기가 이루어지고 땀을 쭉 빼고 운동한 뒤의 개운함처럼 마음의 상쾌함이 느껴졌습니다.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여러 번 읽어보면서 '그때 이런 감정이었구나', '그때 이런 상황이었는데 나는 지나치게 반응했었구나' 또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같은 식으로 지난 감정을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걸 통해 감정과 상황 속에 놓여있던 저를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엄청난 해방감과 해소감을 느꼈고 글쓰기는 저에게 치유의 힘을 주었습니다.
한 달 꼬박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치유과정을 겪으며 드러나는 저의 모습이 달라지니, 자연스럽게 남편도 저의 글쓰기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10년 이상 쓴 맥북에어 시동디스크가 나가버린 이후였는데, 어느 날 남편에게 밖에서도 언제든 글을 쓰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더니, 선뜻 노트북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깊은 동굴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오랫동안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아내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살아나고자 글쓰기와 명상을 꾸준히 하며 달라지는 것을 남편도 분명히 느꼈을 것입니다. 마치 백일기도나 백일 간 침묵수행을 하다 사람으로 변해 나온 것처럼, 저는 무려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완전히 죽어 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땐 지옥이었으나, 마치 동굴 속에서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으며 빛을 보지 않고 견뎠다는 한국 역사의 최초의 여성인 웅녀의 정신이 나에게도 이어진 게 아닐까 하는 묘한 생각이 듭니다. 웅녀는 신이 제시한 100일을 치열하고 능동적이게 단축하여 21일 만에 목표를 성취하였다는데, 한 달간 제가 쓰고 발행한 글의 개수 또한 놀랍게도 정확히 21개였으니까요.
습관을 바꾸는 데 최소한 21일이 필요하다는 1960년대 미국 의사 맥스웰 몰츠의 저서 '성공의 법칙'에서 나온 21일의 법칙과도 수가 일치하니 참 재미있지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