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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Aug 18. 2024

[교토] Day 3. 발길 닿는 대로 교토를 걷다

2024. 07. 19. 금요일

날씨 : 어제보다 조금 더 맑아짐. 오후 4~5시에 비 예보가 있었으나 오지 않음




교토에서의 세 번째 날이다. 오전 10시에 잠에서 깬 후 침대에 누워 오늘은 뭘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일기 예보도 비가 오지 않는다 하여 오늘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장소에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일반적인 단기 여행에 비하여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더욱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하루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 장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어제 산조 거리와 시조 거리 근처 작년에 가 봤던 곳들은 얼추 둘러봤으니 오늘은 숙소에서 걸어서 갈 만한 범위에서 새로운 곳들을 가 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 저장해두었던 관광지들을 한참 뒤적거리다 눈에 띈 곳은 “센토고쇼”였다. 센토고쇼는 17세기 조성되었던 천황의 궁으로, 19세기에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정원만 남은 곳이다. 교토의 주요 문화재 중 하나인 데다가, 숙소에서 걸어서 약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라 이곳을 가보기로 하였다. 정오가 되기 조금 전에 숙소를 출발해 카와라마치 거리에 있는 라멘집에서 라멘을 먹고 센토고쇼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만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무더위였다. 날씨를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대에 걷는 일정을 잡으니 진짜 죽을 맛이었다. 서울의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과 비슷한 거리였고 기온도 비슷했으며 크게 습하지도 않은 맑은 날씨였는데 이상하리 만치 너무 힘들었다. 반쯤 익혀진 채로 센토고쇼에 도착해서 그 안을 들어가 봤는데 궁 같은 느낌이라기보단 그냥 밝은 회색 자갈이 넓게 깔려 있는 거대한 마당 혹은 공원이었다. 주요 보행로는 중간에 나무도 없는 그냥 드넓은 자갈밭이라 더위를 증폭시켜 주는 듯했다. 그 안을 조금 걸어 보다가 이러다 진짜 탈진하겠다 싶어서 다시 나왔다. 내가 입구를 잘못 찾았거나 입장 시기를 잘못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선은 아무 실내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풍경은 좋았지만 너무 더웠던 센토고쇼

다시 숙소가 있는 산조 거리 쪽으로 방향을 돌려 걷던 도중, 길거리 광고판에 그려진 말차 빙수 그림이 눈에 띄었다. 마침 너무 더웠던 데다, 일본에 가면 자기 대신 꼭 빙수를 먹어 달라는 대학원 선배의 말이 생각나 가게에 들어갔다. 손님이 없어 조용하지만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의 카페 겸 제과점이었다. 말차 빙수는 양이 조금 적긴 했지만 잠시나마 더위를 식히기엔 문제없었고 맛도 훌륭했다. 빙수 가게를 나와 걷다 보니 테라마치 거리가 보였다. 내가 가는 방향에 마침 미리 알아두었던 카페가 있어서 한번 들어가 보았다. 일반 카페 느낌은 아니었고 직원이 서빙을 해 주는 방식이었으며 약간 근대적 느낌이 물씬 나는 카페였다. 원래 카페에 들어가서 책을 펴고 일본어 공부를 좀 하려 했던 나는 분위기를 살피다 그냥 적당히 커피만 다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카페에 있다 보니 문득 작년에 방문했었던 시조 거리 근처 작은 카페가 생각나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걸어가기엔 거리가 좀 되긴 했지만 빙수 가게와 카페에서 조금씩 쉬어서 그런가 나름대로 걸을 만했다. 그 카페에 도착해서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녹차 라떼를 주문하고 앉아 일본어 책을 펼쳤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넓은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냇물의 조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무더위는 잊고 잠시 평화를 즐기며 일본어 책을 보다가 손님들이 조금씩 들어오는 것 같아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냇물이 보이는 작은 카페

이젠 또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던 도중 시조 거리 번화가에 교토 포켓몬센터가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체력도 좀 회복했겠다 이번엔 포켓몬센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시조 거리를 걸어 포켓몬센터에 도착하니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작년에 가 보았던 도쿄 포켓몬센터 메가보다 훨씬 많은 포켓몬 인형과 굿즈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잠만보와 먹고자 인형도 많았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포켓몬센터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원래 여행 중 가능한 짐을 줄이기 위해 오늘은 대충 구경만 하고 기념품 구매는 여행 마지막 주에 한 번에 하려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손에 포장된 잠만보와 먹고자 인형이 들려 있었다. 들뜬 기분으로 포켓몬을 좋아하는 대학 후배들에게도 연락해 기념품을 사 가겠다고 말해 주었다.


숙소에 돌아와 쌓인 빨래를 하러 빨랫감을 모아 지하로 내려갔다. 지금껏 일주일 넘는 기간을 혼자 여행한 적이 없어 여행 중에 빨래를 해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해외다 보니 여행 숙소에서 빨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세탁실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관광객 한 명이 세탁기 돌리는 법을 영어로 알려 주었다. 덕분에 손쉽게 세탁기와 건조기 사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친절한 사람을 만나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세탁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왔다. 오늘 저녁은 근처 니시키 시장에서 길거리 음식으로 먹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가격대가 일반 식당보다도 더 비싼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광장시장과 같이 관광객들을 주로 상대하는 시장은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나 보다. 시장에서는 간단히 게살 구이와 타코야끼로 요기만 하고, 이자카야에 가서 배를 좀 더 채울 생각에 다시 산조와 시조 거리 사이에 있는 기야초 거리로 향했다. 이번에는 일반 이자카야가 아닌 “타치노미” 이자카야에 가보기로 했다. 타치노미는 앉아서 오래 마시는 술집이 아닌 서서 마시는 술집으로, 간단히 마시고 나가는 분위기인 대신 가격대가 일반 이자카야에 비해 약간 저렴한 술집이다. 비교적 캐주얼한 분위기는 덤이다. 생맥주와 야키토리의 조화는 역시 믿고 먹는 조합이었다.


배를 채운 후 소화도 시킬 겸 카모강으로 가서 밤산책을 했다. 강가에 앉아 경치를 보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았고, 마술 버스킹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분위기는 서울 뚝섬공원과 비슷했지만, 카모강변은 근처의 거리와 상점들이 바로 연결되어 있어 훨씬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다. 카모강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한참을 산책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교토의 매력에 한층 더 빠져드는 하루였다.

저녁 무렵의 카모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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