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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Jun 04. 2024

혼자 살면 가끔 놀랄 일도 있지

책임의 무게 같은 것들

갑자기 쿵!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깬 새벽이었다.


소리엔 놀랐지만 그다지 재빠르지 못한 걸음으로 세탁실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양쪽 벽 사이에 고정해 둔 길이 조절이 가능한 선반이 선선해진 날씨에 미리 정리해 올려둔 선풍기의 무게를 못 이기고 끽 기울어져 있었다.


세탁실 바닥에는 잠시 쓸모의 유예를 견디고 있던 선풍기가 나뒹굴었고 신발 상자, 공구함, 그릇 건조대, 재활용 비닐 뭉치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비몽사몽이었던 탓에 다음날 아침에 그 자리를 정리했다. 무거운 물건들은 아래쪽에, 가벼운 물건은 위로 올렸다. 나름 과학적 이치에 맞는 정리 정돈에 이제 좀 마음이 놓였다.


사람이나 선반이나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의 선이 있다.


문득 무거운 짐을 꾸역꾸역 안고만 지냈던 옛날이 생각났다. 어딘지 모르게 고장이 날 때까지 내려놓지도 못하고 한 껏 긴장한 몸으로 짊어만지고 갔던 세월말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청춘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그것을 열정이라 불렀다.


견디지 못한 무게는 나를 기울어지게 했고 그것의 수평선을 맞춰가는 게 인생에서 말하는 책임 같았다. 책임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잘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했다.


어쩌면 또다시 짙은 새벽 어디선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나도 나는 또 저벅저벅 걸어갈지도 모른다. 걸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하겠지.


무거웠구나. 내가 또 몰랐구나.


다시 선반을 고정하고 기울어지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간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나의 적정선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무게를 찾아가는 과정.

내게는 그것이 독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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