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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Jun 06. 2024

자취생의 컬래버레이션

욕망의 침실 세팅의 최후

자취 4년 간 매트리스=침대 라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6평의 햇살방에서 8평의 7번 방으로 나름의 +2평 업그레이드를 해보니 덩그러니 모셔온 매트리스가 다소 초라해 보인다. 그때 처음으로 침대 프레임이라는 가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면 씀씀이도 커진다 하던가. 더 넓은 집이 생기니 그만큼 집에 뭔가를 더 들이고 싶어 진다.


인간의 욕심이란


눈독 들였던 침대 프레임은 매트리스 아래로 넓은 서랍이 있어 부피가 큰 짐을 넣어 두기 좋아 보였다. 좋아할 이유를 찾는 건 아주 쉽지. 그렇게 욕망의 가구를 주문했다. 설치 기사님께 방의 제일 깊숙한 부분, 창문 앞으로 설치를 부탁드렸다. 그 앞으로 커튼을 쳐서 생활공간과 분리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집에 없을 때 기사님이 방문해야 하는 것이 영 찝찝했는데 기사님은 설치 과정을 사진으로 공유해 주셨고 높이 차이가 있는 바닥을 고려해 박스를 작게 오려 가구 한쪽 귀퉁이에 꽂아주시며 세상 친절하게 쫄보 자취생의 마음을 토닥여 주셨다.


하, 이제 무릎을 꿇지 않아도 누울 수 있다니!


그렇게 자존감과 사리사욕을 모두 챙긴

감격의 침실 세팅이 완성 됐다.


6개월간은




처음 맞이한 7번 방에서의 겨울은 혹독했다. 여름엔 시원해서 좋았는데 겨울에도 시원할 줄은 몰랐지. 창가의 한기 때문에 자려고 누우면 코 끝이 찡했다.


창문 가까이 설치한 침대를 조금 더 앞쪽으로 빼고 옆에 있던 행거로 한기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침대가 도저히 내 힘으로 움직이질 않는다는 거다. 이럴 땐 정말 한 명만... 이런 생각이 절실하다.


여분의(?) 한 명 따위 없는 자취생은 결국 죄 없는 서랍을 분해하기로 결심한다. 분해하고 자리를 이동해 옮겨두고 다시 조립할 생각이었다.


공구함을 열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침대 해체쇼를 위해 오래간만에 빛을 본 드릴이었다. 생각보다 쇼는 순조로웠고 분리한 나무판자는 크기별로 세워 구석에 두었다. 그렇게 큰 가구를 하나 치우고 보니 집이 다시 넓어 보였다.


그 휑한 게 싫어 들였던 건데

어째 원하던 걸 치운 게 더 나았다.


이런 갈대 같은 인간


초라한 나무판자 조각으로 돌아온 (전) 침대 부스러기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책을 읽거나 아이패드를 볼 수 있는 작은 테이블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즉시 조합 가능한 재료들을 스캔했다.


저 멀리 보이는 나무 선반, 그 위에 부스러기 중의 판자 하나를 올려봤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판자는 너비가 선반과 비슷했고 어떠한 공구 없이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테이블 하나가 금세 완성됐다.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1인가구에겐 쓸모가 많은

얇고 긴 책상이었다.


해체쇼에 이은 조합쇼까지 1일 2타의 원맨쇼를 성황리에 마친 자취생은 테이블에 차 한 잔 올려두는 여유까지 발휘한다.


비록 큰맘 먹고 시작한 욕망의 침실 세팅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예상치 못한 컬래버레이션으로 세상 하나뿐인 맞춤 테이블을 만들어냈고, 심지어 원한다고 생각했던 본래의 가치보다 더 큰 만족을 얻었다.


어쩌면 진짜 원하는 건

많이 시도해 본 사람이 얻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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