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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Jun 07. 2024

나 혼자(병원) 간다

웨이팅 1시간 진료 맛집

이사 후 처음으로 동네 정형외과를 찾은 날이었다. 병원은 그렇게 최신식도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은 적당히 깔끔한 곳이었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유명한 곳인가 싶었다.


장장 1시간의 웨이팅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다소 왜소한 체격의 의사 선생님은 본인의 작은 얼굴을 전부 가려버릴 것만 같은 마스크를 끼고 나를 맞이해 주셨다. 분명 깡 마르셨는데 말투와 눈빛에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보통 병원에서는 어디가 아프다 하면 아픈 곳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불변의 진리라는 듯 병명이란 이름표를 붙여주기 바쁘다.


이게 이런 병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약을 드세요.

식의 진찰말이다.


그 묘한 가스라이팅에 중독이 되면 어느 순간 아파서 병원에 가는 건지 얄짤없는 네이밍 하사와 알약 몇 줌을 받고 그저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안심’이란 걸 하러 가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선생님은 나의 아픈 발가락을

이리저리 만져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관절에 무리가 가서 발가락이 잘 안 구부러지는 것 같네요. 주사를 맞으면 바로 좋아지겠지만 스테로이드 성분이 약간의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어서 당분간은 관절염 약을 드시고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그때 주사를 써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볼이 넓은 신발을 신는 게 좋으실 것 같고요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푹신하거나 겉이 말랑한 신발은 발가락이 겉돌아서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의사들의 장기자랑과도 같은 병명 판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게 정말 관절염인지, 약을 먹으면 좋아질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융통성 있는 열린 결말 기저에 깔린 그의 불꽃같은 자신감이 환자 1의 불안함을 잠재워줄 따뜻한 이불처럼 느껴졌다.   


말투가 상당히 당차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계속 끄덕였고 주사 대신 약이라는 차선책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발가락에 주사를 맞는 건 그다지 생각하고 싶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데스크 앞에서 수납을 기다리던 때에도 주변엔 의자 하나의 빈자리도 없이 환자들로 가득했다. 알아듣지도 못할 무슨 놈의 증후군 이라는 둥 그러니 소염제를 드세요와 같은 설명보다 납득할만한 쉬운 상황 설명과 당장 적용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왜 이렇게 병원에 사람이 많은 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은 좀 무서웠다.


혼자 살면서 이렇게 갑자기 아플 때마다 몰려오는 막연한 두려움, 지금 부지런히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초조함, 엄마 아빠가 저렇게 아프면 나는 적극 도와드릴 수 있을까 하는 죄송함 등이 근육 하나 없이 앙상해진 어느 할머님의 다리를 보면서, 휠체어에 몸을 싣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할아버님의 생기 없는 표정을 보면서 해일처럼 마음속을 뒤집어 놨다.


인생에서 해일을 마주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건 없으나 곁에 누구를 둘진 결정할 수 있었다. 다들 그런 마음으로 이 불꽃같은 남자를 찾아왔을 테다.


그러나 나는 이 불꽃 남자와의 만남이

6년 독립의 쉼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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