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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진 Feb 04. 2024

염전에서

2023년 8월 27일

"예전만큼 텔레비전에 나가는 거 와! 막 좋아하고 그러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나는 소금밭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듣고 나니 깨달았다. 여기는 전라남도 남해의 어느 마을이었다. 바람 냄새로 이곳에서 바다가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소금쟁이들은 며칠 비가 내려 일을 못했다고 했다. 구름 사이로 보이지도 않는 해가 뜬, 오후 반나절 동안 남은 소금들을 걷어야 한다고 했다. 어쩌다가 내가 여기까지 왔더라? 그랬다. 일 때문이었지. 어제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남은 인터뷰를 얼른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도 막아야 할 생방송이 있으니깐. 아니다 내일 있었던가. 오락가락이었다. 어쨌든 막아야 한다.


'막는다'라니. 매일 마감이라는 게 있는 직업은 늘 이런 걸까. 왜 일을 막는다고 표현할까. 도대체 누구한테서 무엇을 막는다는 거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방송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뜻인가. 허겁지겁 급급하단 의미 아닌가. 왜 일을 수동적으로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나는 며칠간 잠을 자지 못했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얼굴들을 못 보고 있다. 목소리도 도통 듣질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이렇게 다들 사는 거겠지. 다른 직장인들도 똑같을까. 하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내가 일을 마무리하길 기다리는 동료들이 있었다.


마음이 급하지만 해야 할 일이 더 남았다. 그런데 인터뷰를 따는 일은 운이다. 대게 잡상인 취급받고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럴 수 있다.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 후원을 요청하는 사람들 모두 비슷하다. 시간을 빼앗는 귀찮은 존재들처럼 여겨질 테니 말이다. 내 직업은 환영받는 일보다는 천대받는 일이 돼버렸으니까. 기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기자 어머님뿐이라던가. 그런데 심지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어야 한다면, 더욱이 보통의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익숙지 않다. 요컨대 내게 거절당하는 일은 너무 쉬운 일이다. 인터뷰를 수락하고 카메라가 돌기 직전까지 나는 철저히 '을'이다. 그렇게 거절을 반복하다 보면, 낯설어도 도움의 손길이 온다.


하지만 아직도 익숙하진 않다. 거절당하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다. 나는 타인을 볼 때 예의와 존중을 중요하게 여긴다. 대꾸도 안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화를 냈던 적이 있다. 마치 그것이 내 권리처럼 생각했다. 선배들에게 낮은 꾸지람을 들었다. '저 사람이 우리에게 인터뷰를 해줘야 할 당연한 이유는 하나도 없다'라고. 처음에는 어설프게 매달려 보기도 했다. 그래봤자 백번이고, 천 번이고 거절당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긴다. 특별한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을 찾는 것'. 더 이상 힘 빼봐야 소용없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태산을 옮기는 것보다 힘들다. 더군다나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 따윈 주어지지 않는다. 이건 일이다. 기계처럼 다음 대상을 찾는게 효율적이다. 그래서 '미안해요'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에겐 차라리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야 이 일을 시작할 때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험부터 하도록 내모는지 알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거부돼야 하는 걸까.


"아니요. 안 할래요". 나는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양철인형처럼 움직이던 몸은 빳빳히 굳었다. 그건 이런 시골 마을에서 겨우 만난 염부가 한 말 때문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겠다면서 열댓 개의 염전을 가로지른 뒤였다. 이미 다리가 풀리기 직전이라서까. 맞다. 더 이상 걷고 싶지도 않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당연히 인터뷰를 해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머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걸까.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그런 말을 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단순히 거절해서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거절하는 방식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를 설명하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뿐인데, 그것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태도였다. 요즘 표현으로 '선을 넘었다'라고 하던가. 사실 그 사람이 한 말은 완곡한 거절이었을지도 모른다. 별 뜻도 없었을 테다. 그러나 내 마음은 서서히 복잡해지고 있었다.


나는 인터뷰를 포기하고 서울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뚝길을 따라 걸어갔던 만큼을 돌아온 뒤 그냥 일정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말을 적어두었다. '예의가 없었던 건 나였을까, 그였을까'. 사실 나는 일을 하면서 받는 수많은 악플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내게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리는 말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을 존중하고 있을까. 나를 아끼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있을까. 이건 다 일 때문이라고. 미안하다고. 이해해 달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몇 번이나 거짓말을 했던가. 이 일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처럼 속이진 않았나. 얼마나 무례한 사람이었나. 별 것도 아닌 '일'을 추켜세우고, 타인을 낮게 깔아 뭉갠 것이. '참 대단한 일,일,일 일을 하고 계시네요.' 그 말 한마디에 폐부를 찔렸나 보다. 어느덧 달리는 창 밖으로 보이는 산 너머로 먹구름이 완전히 가렸다.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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