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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17. 2024

이제 그만 소유하자고 말하고 싶어서

각자의 몫

내가 왜 가진 것을 소비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냐 하면 아주 사소한 이유들로 시작했다. 



지난번 친정에 갔는데 엄마 화장대에 바디, 헤어 오일이 정말 조금 쓰인 채 계속 그 자리에서 먼지가 쌓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오일은 무려 프랑스 파리에서 사 온 것으로 가격도 좀 줬던 것 같은데

지난번에도 지지난번에도 그 오일은 그 자리에서 전혀 양의 변화도 없이, 미동 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 사놓고 잘 쓰지 않지?' 이런 생각이 그 오일을 볼 때마다 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이 값비싼 것을 이렇게 묵혀놓고 안 쓸 것 같으면 내가 가져가서 쓰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엄마에게는 오일이 새것이 한 개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오일을 가져왔다. 마침 헤어 오일이 떨어진 참이었다. 그리고 그 오일이야말로 헤어, 바디에 바를 수 있는 나름 만능 오일이라 몸과 거칠어진 손과 발에도 바르면 딱 좋을 참이었다. 나도 그 오일을 가져와서 매일 바를 줄 알았는데 또 그것도 아니었다. 헤어오일을 매일 바르지 않았듯이 가뭄에 콩 나듯 썼고 결국 그 오일은 여전히 1/3 정도가 남아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가져와서 쓴 양이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헤어오일과 바디로션을 새로 사지 않아도 되었다. 나에겐 그 헤어오일이 있으니까.



비단 친정 엄마뿐만 아니다. 시댁에 가면 옷장에 옷이 가득하다. 그 다음번에 방문하면 새로운 옷이 더 많아진 기분이다. 기존에 서랍장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왔는지, 아니면 옷을 더 사신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쌓여있는 옷더미 모습을 보고 질려버려서 절대 아무 옷이나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하튼 매번 갈 때마다 새롭게 채워지는 옷을 보며, 옷장을 보며, 옷방에 빼곡하게 보관되어 비슷비슷한 옷들을 보며 숨이 막혀버렸다.



시댁, 친정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집에도 그런 상황이 있다. 바로 우리 아이다. 당연히 아이답게 갖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 나는 물건을 많이 사주지 않는 부모에 속하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장난감이 자가증식하는 기분이다. 게다가 생일이라고 친구들에게 선물을 가득 받아오고, 학교 축제라고 선물을 받아오고, 어린이날이라고 받아오고, 크리스마스라고 받아오고, 학교에서 과학수업 했다고 가져오고, 미술 수업했다고 가져오고, 여행 왔으니 선물을 사겠다고 하고 등등등... 그러는 통에 조금만 느슨해지면 집에 장난감이 넘쳐난다.



이렇게 주위에 물건이 넘쳐나다 보면 정말 물건들이 지긋지긋해질 때가 있다. 내 물건도 아니라 엄마가, 어머님이, 아이가 알아서 처리하면 될 물건들이지만 왜 그것들을 생각만 해도 답답한지 모르겠다.  그게 싫어서라도 나라도 소비를 멈춰야지 그리고 가진 것을 모두 소비해야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는 것이다.












이번 방학을 맞이해 친구들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집에도 물건이 넘쳐났다. 가득 차있는 서랍장과 냉장고, 빽빽하게 차있는 팬트리, 아이들의 방에 장난감이 가득했다.



사실 우리 가족만, 우리 식구들만 이렇게 물건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집에 가보니 그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눈을 두는 곳곳에 가득 물건이 즐비했다.  모습은 마치 우리 모두가 물건이 넘쳐흐르는 세상에 사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사실은 모두에게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들에게도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일단 나부터 소비를 멈추고 가진 것을 모두 소진하는 사람이 되어야 그들에게 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 나부터 가진 것을 모두 소비하는 사람이 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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