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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10. 2024

홈카페로 커피와 차를 소비합니다.

제주에 와서는 택배 주문하기를 그만뒀다. 정말로 꼭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면 택배주문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택배를 주문한 적이 없는데 택배차가 집 앞에 서고, 택배아저씨가 상자를 들고 우리 집으로 다가오셨다. 무슨 택배일까 싶어서 가보니 바로 친구가 보낸 택배였다.



무슨 택배일까 열어보니 상자 안에는 커피 캡슐이 가득 들어있었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는 분명 지난번 만날 때는 드립 커피를 선물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커피 캡슐을 가득 보내주었다. 덕분에 제주에 사는 동안 커피가 마를 날이 없이  마실 수 있었다. 마치 무제한 커피코너가 집에 있는 기분이었다.








친구가 커피 선물을 해줬을 때 정말로 기뻤다. 최근에는 필요하지 않은 선물을 받는 것도 불편한 데, 다행스럽게 선물로 받은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커피였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1순위가 커피인데 그것을 잊지 않고 선물해 주는 친구가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서 커피 마시는 날이 많지 않다 보니 커피의 소비가 더디었다. 그래서 지난여름에 받은 캡슐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이번에 글을 쓰려고 확인해 보니 그때 10줄의 캡슐과 1줄의 캡슐 샘플러를 선물로 받았는데 아직도 6줄의 캡슐이 집에 남아있었다. 1줄에 10개씩의 캡슐이 들어있으니 총 60개의 캡슐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사실 커피를 매일 마시니까 110개의 커피 캡슐도 4~5 달이면 충분히 마실텐데,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집에서 커피를 마시니 커피 캡슐이 여전히 그대로인 것이다.



이번에 '가진 것을 모두 소비합니다'라는 글을 쓰며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은 커피 소비였다. 특히나 남은 캡슐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올해는 이 캡슐만 마셔도 충분하겠다. 더 이상의 커피 소비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집에 커피 캡슐만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래 커피 말고 차도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선물을 받기도 하고, 마셔보고 싶은 차는 구매하기도 하고, 특히나 가끔 가는 여행에서 호텔에서 들고 오는 티백(한 두 개) 도 있었는데 마시지 않고 계속 모으기만 했더니(일부러 그런 것이 아님) 생각보다 많았는지 차를 보관하는 상자도 꽉 차있었다. 



지난번에는 오빠가 꽤 많은 양을 샀다며 소분해 준 티백인 '꿀카모마일 홍차'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생각보다 내 취향이라 꽤 자주 마셨는데 여전히 몇 개가 남아있었다. 게다가 지난 생일에 친구가 차와 컵을 선물로 보내줬는데 아직 그 차도 절반이상이 남아있다.



그래도 커피는 노력하지 않아도 꽤 많이 마시는데 비해 차는 더 적게 마시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유통기한을 모르는 차들도 있어서 보관만 하다가 버리기도 일쑤였다.



아무래도 유통기한이라는 숫자가 있어서, 괜히  마음만 급해진다. 보통 커피도, 차도 1~2년 정도라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 내로 무엇을 전부 소비하는 것이 이렇게도 더디다니! 참 어렵다.



이제는 홈카페로 마셔요, 커피






지난번엔 과일청을 선물로 받았다. 한라봉차, 청귤차, 유자차가 들어있는 세트였다. 그러나 이미 냉장고에는 즐겨마시는 과일차가 보관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주로 모과차를 즐겨마시기 때문에 그것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것도 여름에는 잘 마시지 않고 가을, 겨울에만 주로 마시기 때문에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갑자기 과일청이 3개나 생기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있었다. 선물로 준 사람에게는 미안했지만 도저히 유통기한 내로 혼자 다 마실 수 없어서 가까운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다. 같이 나눠먹으니 나의 부담도 덜어졌다. 나누는 기쁨과 더불어 다 같이 맛있게 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글을 읽다 보면 선물로 받은 것을 그냥 먹다가 다 못 먹으면 버리면 안 되냐고, 유통기한을 넘으면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남들은 그렇게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냥 이런 나를 나도 어쩔 수가 없는 까닭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나만 왜 늘 물건을 처분하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다들 굉장히 자주 사고, 쓰고, 물건이 넘치던데 왜 나만 물건을 다 완벽히, 알뜰히 소비하지 못해 난리인 상태일까?



많은 물건을 보면 정리하고 싶고, 버리고 싶고, 나눠주고 싶고 심지어 요즘엔 물건이 가득 쌓여있는 것만 봐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저렇게 많은 물건들이 어디서 나온 걸까? 그래서 나중엔 다 어떻게 처리하려나?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 캡슐이 가득 쌓인 상자도, 차가 넘치도록 보관된 상자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요즘의 나는 물건하나를 끝까지 소비하고 버릴 때 가장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올해는 집에 있는 각종 커피와 차를 보며 다른 커피 드립백이나 차 티백에 욕심내지 말아야 하지 하고 다짐해 본다.  



그래서 더더욱 홈카페에 열중한다. 카페대신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차를 마신다. 이미 집에 있는 것을 소비하니 좋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절약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마시는 꿀차






선물을 받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과하면 불편하다. 내게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넘치도록 생기는 기분이랄까. 이미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물건은 넘치고 언제든 우리는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가 캡슐 커피를 다 마셨냐 묻길래, 집에 넘치도록 많이 남아있다고 얘기해 줬다. 친구에게 받는 커피 선물은 너무도 좋지만 일단 집에 있는 커피와 차를 다 마신 후에 내가 원하는 것으로 소량씩 사 먹어볼까 한다.



여전히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도 많다. 일단 가진 것을 모두 소비해 보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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