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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13. 2024

필요 없네, 가방

요즘 나는 출근을 한다. 오랜만에 출근을 하니 옷을 굉장히 다양하게 입게 된다. 아직 새로운 옷을 사지는 않았고, 일단 가진 있는 옷을 돌리고, 돌리고, 돌려서 입고 있는데, 다양하게 매치하니 분명 내가 가지고 있던 옷들이었는데 왠지 다 새로운 옷처럼 느껴지는 기분이다.



한때 옷 욕심이 많았다. 지나가다 예뻐 보이는 옷이면 싸다고 사기도 하고, 봄이면 봄이라고 샤랄라 한 원피스가 입고 싶어 사고, 여름이면 여행 간다고 옷을 사고, 가을이면 가을이라고 가을 느낌 나는 옷을 사야 하고, 겨울 옷은 코트가 예뻐서 많이도 샀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옷을 많이 샀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수년 전 아이를 낳게 되고, 그 후에 미니멀 리스트의 삶을 살게 되면서 많이도 정리했다. 특히나 제주에 와서는 최소한의 쇼핑을 하다 보니 옷의 개수는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가지고 있는 옷을 보면 수년 전부터 계속 입었던 옷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스타일의 옷이 탐이 나긴 한다. 게다가 봄이 되었으니 샤랄라 한 옷이 사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은 잘 버티고 있다. 계절은 곧 지나갈 테니까...








실은 옷 욕심보다 더 많은 것이 나에게 있었다. 바로 가방이다. 보통의 여자들 중에 가방 안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까? 물론 있기도 하겠지만 내 주위에는 친정엄마 빼고는 가방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사실 그동안 가방 이야기는 한 번도 글에 쓴 적이 없다. 아직은 가방에 대한 얘기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완전히 내려놓은 물건이 아니라 그렇다. 물론 제주와 서는 가방을 거의 사지 않긴 했는데 그렇다고 아예 안 산 것은 아니라 떳떳하지 못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샀지만 하나도 사지 않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일 테다. 과연 가방을 하나도 사지 않고 몇 년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할까?



솔직히 나는 어떤 면에서는 지독한 구두쇠 같은 녀석인데 가방 사는 것은 아깝지가 않았다. 그래서 소위말하는 값비싼 명품가방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이라 소유하고 있는 것일 뿐이지만 가방은 한때 나에게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겉멋에 잔뜩 들었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한때였다. 지금은 가방에 대한 마음을 많이 접었다. 물론 중간중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상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마음을 비워내긴 한 것 같다.



게다가 제주의 영향이  크기도 했다. 여행지라 갈 곳은 다양하지만 더 이상 내가 갈 곳이라곤 없어서 이 많은 가방을 쓸 일이 없었다. 특히 고가의 명품백들을 가지고 다닐 곳은 더욱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고가의 가방을 사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다시 일을 시작하면 가방을 들고 다닐 일이 많을 줄 알았다.



그러나 차를 타고 집에서 일터로, 흔히 말하는 door to door으로 출근하는 나에게는 가방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것은 핸드폰, 차키, 텀블러였다. 결국 텀블러는 손에 가지고 다닐 것이고, 차키와 핸드폰은 이곳저곳 주머니에 잘 넣으면 더욱이 가방이 필요 없었다. 심지어 지갑도 들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위급한 상황은 삼성페이가 있다) 가방을 들고 다녀도 무용지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방이 필요하긴 하다. 가방이라고 말하기에는 가방이라 말할 수 없는 에코백들이 그 주인공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에코백에 수업하는 책들을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주로 사용하는 가방들은 주로 손바닥만 한 가방, 손바닥 두 개 합친 사이즈 등등 그렇게 큰 가방이 없다. 당연히 책이 들어갈 사이즈가 나오지 않는다.  어떤 날은 책이 2권, 어떤 날은 3~4권도 들고 다니고 그 외에 수업자료들도 들고 다니다 보니 예쁜 가방이 필요가 없고 넉넉한 에코백이 필요한 것이었다.



당연히도 집에 여러 개의 에코백이 있으니까 그중에 한두 개 골라서 사용하면 되었다. 다행히도 나에게 특정 에코백의 욕심이 없어서 여기저기서 받은 것들이 많아 그것들로 충분했다.








다시 출근을 하면 내심 새로운 가방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고작 필요한 가방이 에코백이라니! 그것도 집에 넘쳐나는 에코백이라니!



이번에 일하게 된 곳에서도 자신들이 만든 굿즈라며 에코백을 주었다. 에코백은 (집에 많아 필요 없다고) 한사코 거절했지만 자기들도 과하게 많이 만들어 놓아서 남아돈다고 했다. 그렇게 새로운 에코백이 한 개가 더 생겼다.



집에 와서 에코백의 개수를 세어봤다. 에코백은 내가 산 것은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에도 에코백 개수가 최소 5개~10개는 되지 않을까? 



물론 생활에서는 에코백이 유용할 때도 있다. 도서관에 자주 가니 그곳에 책을 넣어서 가지도 다니기도 하고, 마트에 가서 장 볼 때 물건을 담아 오기도 하고... 또 언제 쓰더라?







내가 가진 에코백들은 지난 2년 반동안 최소 수십 번은 썼다. 그런데 여전히 멀쩡하다. 아직도 쓰지 않은 에코백이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 물건이 넘치는 세상이다.  에코백마저 이렇게 후한 세상이라니!



이제는 정말로 가방을 새로 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미 가진 가방과 에코백 여러 개를 돌려 사용해도 충분한 삶이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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