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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y 02. 2024

정원의 낭만은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들어가는 길, 잡초가 여기저기 있는 정원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잡초를 빨리 뽑아야 할 텐데, 자라난 잔디가 더 길기 전에 잘라내할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다.



그런데 마음과 다르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지난주에 출근 전에 잡초를 뽑고, 정원관리를 하고(이유가 있었다) 출근했다가 수업까지 하고 나니 거의 초주검 상태였다. 그 후로는 평일에 정원을 정리할 힘 다시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말에라도 정리해야 하는데, 주말에는 또 쉬고 싶기만 하다.



언제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정원을 힐끗 보니 민들레가 곳곳에 피어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민들레만 제거했다. 그러나 다시 며칠 후 보니 더 많은 민들레가 씨앗을 발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분명 민들레를 다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도 많은 민들레가 남아있었다니! 그래도  많은 민들레 씨앗이 날리면 정말 위험하다. 어느새 정원전체가 민들레 밭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민들레를 제거한다.



그래도 올봄은 정원의 풍경이 꽤 양호하다. 왜냐하면 겨울에 정원관리를 새로 싹 했기 때문이다. 그전부터 최대한으로 깨끗하게 정원정리를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잡초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적당한 선에서 정원관리를 하고 지냈다. 당연히 전문가들이 관리하는 것만큼 깨끗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랬는데 이번 겨울에는 집주인이 그동안 정원에 방치되어 있던 잡초쓰레기를 걷어내주고, 정원의 나무들도 정리해 주고, 제초제도 뿌려주었다.



덕분에 정원이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특이하게도 잔디밭은 관리를 해주지 않았지만 정원이 이 정도로 깨끗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다.



정원에 핀 철쭉







늘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 낭만을 꿈꿨었다. 잔디를 밟으며 아이와 공놀이도 하고, 잔디밭 위에 테이블을 설치해서 차도 한잔 마시고, 저녁이면 그곳에서 바비큐 파티도 하고 싶고,  예쁘게 전구도 설치해서 꾸미는 모습을 상상했다. 특히 아이는 흙과 가까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제주에 정원이 있는 집을 구한 것에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나에게 정원이 생겼다니 처음엔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작은 텃밭도 만들어 보고 싶었고, 좋아하는 그러나 금세 시들던 꽃다발의 꽃대신 작은 꽃밭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작은 텐트를 설치해서 캠핑 같은 것을 흉내 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머릿속의 상상에 불가했다.



드디어 낭만을 꿈꾸는 정원을 갖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관리가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는 그렇게 자연친화적인 사람들도 아니었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봄 여름에는 잔디관리는 물론 정원관리가 엄청 고되다. 해가 많이 내리쬐고,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에 정원은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바로 정글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원사를 고용해서 관리하기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초반에 텃밭을 만들어 보려고 일단 상추를 심었었다. 세상에 상추가 얼마나 잘 자라던지 대량 수확이 좋긴 했는데, 문제는 상추를 따서 그 뒷면이나 줄기에 붙어있는 벌레들을 바라보다 보면 저것을 어떻게 씻어서 먹을 수 있을까. 저 벌레를 다 떼버리고 먹는 것이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포기했다.



물론 그다음 해에는 엄마가 오셔서 오이와 이런저런 농작물을 조금 심어주시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농사가 잘 되었다.



그리고 올해는 마음은 정원 한편에 토마토를 조금 심어보고 싶어 보고 싶긴 한데... 심어볼까 말까만 계속 고민만 하는 중이다.








오늘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역시 다들 반응이 똑같았다. "여름엔 정원에 수영장 만들어 놀면 되겠네요!"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 되겠다." "정원에 매실이 열린다니 그거 따다가 매실청 담가봐요!" "채소는 심어봤어요? 여름에 마트 갈 일 없겠네~~"



그들은 내가 정원이 없던 시절에 하던 생각과 똑같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요즘 내가 정원을 쓰는 일은 고작 이러한 일이다. 집 앞에 넓은 개인공간 있으니 이불을 신나게 터는 정도와 햇살이 좋은 날에 빨래한 옷가지를 말릴 때 제일 자주 사용하곤 하는 것이 고작이다.



지금 이대로의 마음이라면 이제 내 생애 다시 정원이 있는 집에 살게 될지 말지도 모른다. 지금 계획에 따르면 다시는 정원에 있는 집에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원이 있는 집에 살기에 우리 가족은 게으르고 의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지금 정원이 있는 집에서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기는 너무 아깝다. 지금 정원이 내게 있는 한 나는 조금 더 잘 사용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과연 앞으로는 정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정원의 잡초는 결국 더 열심히 자라났고, 나는 주말에 겨우 몸을 일으켜 잡초를 뽑아내고 잔디를 깎았다. 고되다 고되... 정오에 시작한 정원 가꾸기는 시간이 그렇게 들지 않았지만 내 하루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나버렸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을 해보자면 아이는 정원에 피어난 잡초 꽃을 뽑아 화병에 꽂아 넣어놓기도 하고, 오랜만에 줄넘기 연습도 하며 정원을 활용했다.




 꽃따는 아이




가진 것을 소비하는 삶이란 이러하다. 지금 내게 가진 자원최대한으로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여 앞으로는 내게 가진 정원을 최대한으로 잘 사용하며 살아보기로 한다. 말이 나온 김에 당장 방울토마토부터 심어봐야겠다. 올여름엔 방울토마토가 가득 열렸다는 글을 써보고 싶다.



여름에 아이와 함께 토마토를 수확해서 샐러드에 넣어 먹어보고 싶다. 벌써 기대된다.



정원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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