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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pr 18. 2024

아무리 마셔도 줄지 않는 차

내가 어릴 때는 우리 집은 생수대신 결명자차를 마셨다. 결명자차의 주된 효능은 눈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눈이 나빴던 오빠와 나를 위해 엄마는 매일같이 결명자차를 끓여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주전자 가득 들어있는 빨간색 차를 마실 때마다 싫었다. 맛이 없었다. 쓰고 진하고 별로였다. 가끔이라도 그냥 평범한 보리차를 마시고 싶었다. 특히나 내가 어렸을 적에는 생수도 정수기도 없었던 터라 결명자차 밖에 선택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결명자 차를 마셨으면 시력이 좋아졌어야 하는데 끝내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수술을 통해 새로이 거듭날 수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내게 나쁜 눈이 고질병이 었다면 아이에게는 비염이 있다. 어릴 때는 정도가 아니었는데, 점점 심해지는 듯하다. 그래서 비염에 좋은 음식을 찾아 먹이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작두콩차였다. 왠지 어릴 때 마시던 결명자차가 생각났다. 그러나 맛은 차라리 작두콩차가 조금 더 난 것 같다. 작두콩차의 미묘한 맛이 있지만 적어도 쓰지 않고 고소하기 때문이다.



작두콩차...  아이가 비염이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차였을지도 모른다. 본디 작두콩은 엄청 기다랗고 커다랗고 신기하게 생겼는데 그것을 말린 후 잘라서 판매하고 있었다. 티백으로도 나와있고 말린 작두콩도 팔았는데  다 구매해서 차를 우려내 마셔봤. 유기농 작두콩차도 있고 일반 작두콩차가 있었는데 가격이 조금 차이가 난다. 양이 적더라도, 가격이 좀 나가도 아이가 먹는 것이니 유기농으로 구매하곤 했었다.



그 후로도 작두콩 차를 계속 주문해 먹은 지 몇 년이 되었다. 그렇다고 매일 마시게 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런지 솔직히 비염에 효과가 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혹시라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을까 봐 작두콩 효능을 검색해 봤더니 중국의 본초강목이나 본초비요 같은 의학책에 장과 위를 보하고, 속을 따뜻하게 하거나, 신장의 기능을 돕고 원기를 보하는 약효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염증을 없애주는 기능이 있어서 축농증, 비염 등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에 와서 비염이 심해진 건지, 아님 정말로 작두콩차의 효능이 없는 건지 나로서는 확실하게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의 비염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작두콩차를 계속 먹이고 싶었다.






작두콩은 참 크기가 크고 길다.







그동안 작두콩차를 여러번 번 다른 곳에서 주문해 먹었는데 왠지 모르게 완전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유기농으로 키웠다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유기농 농약'이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렇게 못 믿겠으면 네가 직접 키워 먹이던지...라는 생각도 할 테지만 그 정도의 의욕은 없었다.



 아이 비염을 낫게 하겠다고 갑자기 작두콩 농사를 지을 순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우연이 없다. 취미로 아주 작게 시작하던 밭농사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던 친정 부모님이 있었다. 해가 갈수록 농사짓는 농작물의 수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처음엔 토마토, 가지, 고추 정도로 시작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고구마, 깨 등등등 정말 많은 농작물이 그 밭에서 생산되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친정에 갔는데 익숙해 보이지만 조금 다른 생김새의 농작물이 보였다.



"엄마 이거 뭐예요?"

"이번에 작두콩 키웠잖아! 그거 말려서 잘라놓은 거야"

"진짜? 우리 맨날 작두콩차 사다 먹잖아! 엄마 나 이거 가져갈래요"



그렇게 우린 작두콩차를 받게 되었다. 참고로 작두콩차는 적은 양을 넣어도 엄청 진하게 우려 난다. 그래서 물을 정말 많이 넣고 끓여도 작두콩 자른 것은  개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마치 줄지 않는 쌀가마니처럼 영원히 작두콩을 먹을 수 있는 느낌인 것이다.



심지어 그다음 해에도 작두콩 농사를 지셨다. 엄마에게 아이 비염에 작두콩이 정말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더 심어주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마는 옥수수 농사까지 지으셨기 때문에 그 옥수수를 딴 후에(다 먹기 곤란) 알을 따서 볶은 후에 옥수수차도 만들어주셨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 집에는 옥수수차와 작두콩차가 넘쳐난다. 개인적으로는 옥수수차가 훨씬 맛있어서 자주 끓이게 된다. 대신 옥수수가 물에 계속 있으면 점점 퍼져버려서 소량으로 끓여야 끝까지 맛있게 먹을 있고, 작두콩차는 소량으로도 깊은 맛이 나기 때문에 좋다. 무엇보다 정말 부모님이 손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정성 들여서 키웠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든다.





부모님께서 농사지어 주신 작두콩차






이전에는 작두콩차를 조금씩 끓여 먹으며 주로 생수를 마셨는데, 이제 부모님이 농사지은 것을 받아오면서부터는 계속 물을 끓여 먹게 되었다.  



이전에 생수를 계속 사다 마셨을 때는 집에 페트병이 정말 많이 나왔었다. 페트병의 공기를 빼고 납작하게 만들어 커다란 봉지에 계속 모아 놓았는데, 거짓말처럼 봉지는 금방 금방 차버렸다.



물론 일요일에 그것을 들고 동네 재활용센터를 방문하면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2배로 받을 수 다. 처음엔 이것을 제대로 재활용시켜 종량제 봉투를 받는 것에 의의를 두었는데, 정말 못할 짓이었다. 우리 집에서 발생하는 페트병이 이 정도로 많은데, 전국에서 개개인에게서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생각하면 반드시 그만두어야 했다.



하여 내가 조금 귀찮더라도, 사정에 의해 정수기를 설치할 수는 없으니 물을 끓여마시는 것은 선택해야 했다. 마침 부모님께서 가져다주신 옥수수차와 작두콩차가 가득하니 걱정이 없다.



요즘은 매일 저녁 물을 끓인다. 저녁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힐링하고 아침이 되면 컵에 가득 담아 아이에게 건네주고, 학교에 가져갈 물병에 작두콩차를 담아둔다.







가득 끓여놓은 작두콩차







가진 것을 소비하는 삶. 일단 집에 부모님이 농사지어주신 작두콩차와 옥수수차가 풍성하게 있으니 올해 물을 끓여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아마도 올해도 같은 농사를 지을 가망성이 크기 때문에 내년에도 이처럼 물을 끓여 먹는 것이 당연하겠다. 



어릴 적에 마시던 결명자차는 정말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엄마의 사랑이었던 것 다. 내가 지금 매일 밤 작두콩차를 끓이며 아이의 비염이 조금 나아지길 바라는 것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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