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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25. 2022

제주살이가 후회될 때


금요일 밤, 나는 자유를 얻는다. 아이는 금요일 밤마다 앞집 언니들을 만나 놀고 온다. 그래서 생기는 자유시간이다. 고작 3시간 정도의 자유지만 금요일에 얻는 자유라 그런지 더 꿀 같다. 그 시간 동안 딱히 내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 저녁까지 야무지게 먹여놓고(할 일이 모두 끝났다는 얘기) 조용히 내 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너무 좋다. 



우리 집엔 겨우 셋이 살지만, 셋이 있을 때와 둘만 있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물론 둘 말고 혼자 있을 때도 좋아하는데 그때 이 동네에서 느껴지는 고요함, 집안의 한적함이 너무도 좋다. 그러니까 남편과 아이가 함께 집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활기차고 밝은 느낌과는 또 다른 즐거움인 것이다. 






제주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살게 된 이 집은 도심과 가까운 듯 먼 듯 그리고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앞집도 옆집도 그리고 근처의 집에는 모두 어른들만 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동네는 너무도 조용했다. 물론 나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적막함이 너무 좋았고, 제주는 나에게 너무도 평화로웠고 안락했다. 특히 자연과 하나 되어 다른 것에 신경 끄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이 너무도 좋았다. 



그런데 새로운 곳에서 우리들이 얻고 있는 기쁨은 어른들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달랐다. 서울에서 살 때 매일 유치원 끝나고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아이는 친구들이 그리웠고 놀이터도 필요했다. 제주에 도착했을 때의 신났던 것은 고작 며칠뿐 그 후로는 친구들을 찾았다. 



사실 원래 이사 올 때의 우리의 계획은 이사 온 시점(10월~)부터 3월까지 교육기관에 보내지 않고 제주도내를 함께 여행 다니며 유유자적 사는 삶을 꿈꿨다. 그러던 어느 날 키즈카페에 가서 만난 친구와 재밌게 놀다가 집에 온 아이는 울면서 친구들과 만나 놀고 싶다고 말했다. 우린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유치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제주에서 친구를 만나려고 유치원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는 유치원에서 종일 친구들을 만나 놀고 와서도 집에 돌아오면 늘 심심해했다. 







아이는 매주 금요일을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 



처음에 이사 왔을 초반에 마당에서 놀다가 앞집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면 인사를 드렸다. 몇 번 인사를 드린 어느 날, 앞집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매주 금요일에 손녀들이 와서 하룻밤을 자고 토요일 오후쯤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해주셨다. 그리고는 이 동네는 친구들이 없어 아이가 너무 심심해할 테니 금요일에 아이를 집으로 놀러 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이야 얼굴도 몇 번 뵙고 음식도 나눠먹는 사이지만 이사오자마자 아이를 앞 집에 맡기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손녀들이 방문한 어느 금요일 밤, 처음으로 아이는 그 집으로 놀러 갔고, 그 후로는 매주 언니들과 놀게 되었다.  



앞집에 언니들이 매 주말마다 놀러 오다니! 정말 운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제 아이는 동네에서도 친구가 생겼다. 오늘은 금요일,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를 이른 저녁을 먹여놓으니, 앞집 작은 언니가 데리러 왔다. 큰 언니는 아이보다 네 살이 많고, 작은 언니는 한 살이 많다. 나이차가 적게 나는 작은 언니와 더 즐겁게 노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둘은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금요일마다 아이는 언니들과 노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햇살 좋은 주말, 함께 걸어서 학교 놀이터로 놀러간다.










나는 제주에 온 것을 후회했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는 아이를 아무도 없는 제주에 데려오고 난 후, 아이는 생각보다 너무 외로워했기 때문이다. 제주의 깨끗한 공기, 넓은 자연, 층간소음 없는 집, 뛰놀 수 있는 정원,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바다. 생각보다 이것들은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친구만 있다면 그저 좋은 아직 어린아이인 것을 간과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부모의 욕심이고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자 제주도에 왔던 우리가 딱 그랬다.




다행히도 지금은 유치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때론 유치원에서 만난 친구를 주말에 만나 놀기도 한다. 그리고 매주마다 볼 수 있는 언니들도 생겼다. 그리고 종종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제주도에 놀러 와서 함께 만나서 놀기도 한다. 지난 봄 방학에는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와 같이 박물관도 가고, 수영도 하고, 말을 타기도 했다. 어쩌면 이제 아이는 서울에서보다 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겐 지금 제주의 삶은 천국이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그러하면 좋겠다. 훗날 지금을 되돌아볼 때, 우리가 그때 제주에서 살기를 정말 잘했지라고 말하게 될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아이가 커서 '엄마, 우리 제주에서 살 때 정말 즐거웠어"라는 한마디 얘기를 듣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 









오늘은 금요일, 제주는 강풍주의보, 호우주의보가 발효되었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더니 곧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도 괴상해서 언니들이 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도 언니들이 도착했다. 도착한 언니들은 비바람을 뚫고 아이를 데리러 왔다. 아이는 신이 나 버선발로 뛰어 나가려고 한다. 나는 아이에게 언니들과 함께 먹을 과자를 안겨주고 앞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오늘도 아이는 그곳에서 언니들과 즐거운 금요일 밤을 보낼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 부부도 잠깐의 휴식을 갖는다. 아~ 정말 평화로운 금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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