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Jun 17. 2022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것

벌레와의 사투

제주의 어제는 온종일 비가 왔다. 한참을 가물더니 오랜만에 비가 세차게 내린 것이었다. 오늘 아침까지 비가 더니 오후가 되며 해가 떴다. 새소리가 들리고 나비가 날아다닌다. 아주아주 상쾌한 오후다.



번데기에 있던 나비들이었는지, 비 온 후 나비들이 모두 깨어났는지 오늘 유독 나비가 많이 보인다. 내 눈에도 오늘 나비가 유난히 많네? 하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눈에도 였나 보다. 결국 아이들은 그 나비를 잡아 채집통에 넣어왔다. 나는 아이들이 밖에 나간 틈을 타서 나비를 내보내 주었다. 나비를 살았다는 외치며 신나게 날아갔다.



그러던 중 창문 밖에서 벌레가, 한 손가락 반 마디 만한 딱정벌레가 버둥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한참을 정말 한참을 버둥거린다. 고양이가 오길래 벌레에게 다가가는가 싶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저 버둥거리는 벌레를 치울 수도 없고 도와줄 수도 없고 사실 만질 용기도 없다.



그런데 움직임이 점점 느려진다. 설마... 너 거기서 왜 그러고 있는 거야?? 안 그래도 오늘 아침 창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엊그제 깨끗하게 청소한 창틀사이로 벌레가 7마리, 그것도 같은 종류의 벌레가 7마리가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아... 사이즈는 비록 손톱만 한 벌레이고, 모두 죽어있었다지만 참 깨름찍했다. 다 같이 한꺼번에 여기서 이럴 일이야? (참고로 다음날도 그 정도의 숫자가 그곳에서 죽어있었다.) 왠지 너무 무서웠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자주 마주치곤 하는 곤충들









정원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그보다도 잡초를 뽑다 보면 온갖 곤충과 벌레를 맞이한다. 특히 잡초를 뽑을 때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온갖 개미, 거미, 지네, 바 선생을 닮은 벌레, 폴짝 뛰어가는 곤충들... 아무튼 셀 수 없이 많은 곤충을 만나는데 차마 그것 때문에 잡초를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정말 마음을 굳게 먹고 시작한다. 비가 온 다음날에는 내 팔뚝 길이의 지렁이도 보았다. 차마 여기에 사진을 올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지렁이는 익충이잖아 하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집 주위로 약을 뿌리고 나갈 때가 있다. 처음엔 약을 뿌리지 않고 버텨봤는데 그랬더니 날씨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집 안에서 벌레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온갖 것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대체 어디에 구멍이 있는 거지? 싶을 정도로 벌레가 집안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쩔 방법이 없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나에겐 벌레가 호랑이보다 무서웠다. 그래서 집 둘레로 약을 뿌려놨었다. 그래도 약을 뿌린 이후로 확실히 집안(1층)에서 벌레를 만나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2층에서는 벌레가 2~3일에 한번 꼴로 출몰한다. 1층에 앉아있다가 2층에서 우당탕 소리라던지, 종이 뭉치로 여러 번 치는 소리가 난다던지 그럴 때면 벌레가 출몰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1층엔 벌레가 밖에 있는데... 왜 2층에서는 내부에서 벌레가 나오는 걸까 생각해 봤더니 2층엔 전혀 약을 뿌리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2층엔 약을 어떻게 뿌려야 할까 고민 중이다.











지난번엔 아이가 정원에 떨어진 장난감 종이상자를 하루 정도 후에 다시 주워서 집안에 들여놨다. 저녁에 남편과 과일을 먹고 잇었는데 남편이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옆에 있던 두꺼운 책을 들어서 테이블 위를 쾅 내리친다. 과일을 먹다 너무 놀란 나는 "왜 그러는데?" 그러니까 바퀴벌레 같은 것이 그곳에서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아, 안 봐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요즘 벌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눈앞에 벌레가 아른아른 거리는 느낌이다. 집에서 뭔가 자꾸 움직이는 것만 같고 바닥에 뭔가 떨어져 있으면 벌레 같고 그렇다. 실제로 만나게 될 확률은 5% 정도? 어제는 저녁 늦게 남편과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바닥에 떨어진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또 기분 탓일 거야, 완전 트라우마 걸리겠는데' 했는데 아니다! 이번엔 진짜였다. 손마디만 한 지네가 스스슥 빠르게도 기어간다. 그래도 작은 지네라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야 하나?



엊그제 밤엔 발에 뭐가 닿는 기분이 들어서, 발을 살짝 움직였다. 그런데 또 뭔가 와서 부딪히는 기분이 들어서 다리를 의자에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닥을 봤더니 뭔가가 활발히 움직인다. 거미였다. 처음엔 무서워서 2층에 있는 남편을 목청껏 소리 높여 부르기도 했지만 점점 내가 잡게 된다. 하하. 이제 거미쯤이야! 사실 마음은 살살 달래서 밖으로 내보내 주고 싶었지만 순순히 잡혀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거참 이도 저도 못하는 노릇이다.



화장실은 환기를 위해 항상 여러 두곤 한다. 거실 화장실엔 방충망이 있어서 열어놔도 안전하다. 그런데 연이어 이틀 동안 집에서 귀뚜라미를 만났다. 아니다. 내가 아는 건 귀뚜라미지만 진짜 이름은 꼽등이라고 했다. 이틀 동안 꼽등이를 만났는데... 첫날은 아직 꼽등이를 때려잡을 수준이 되지 않아서 조용히 화장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왔다. 한참 후에 남편이 1층으로 내려오길래 "화장실에 꼽등이가 있으니 잡아줘" 하고 같이 화장실에 가봤는데 사라졌다. 화장실 곳곳을 샅샅이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그다음 날 더 큰 사이즈의 꼽등이가 집안에 출몰했다. 어김없이 화장실 창문만 열려있었던 상태였다. 다시 생각해도 방충망에 구멍이 뚫렸을 싶다.











그래도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이 있다. 언젠가부터 동네에 주 1회 소독차 오기 시작했다. 우리 어릴 때 아니 우리보다 더 오래된 세대들은 그 소독차를 따라다니며 소독약 냄새를 맡지 않았나? 그런 소독차를 이렇게 어른이 돼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니 신기하다. 아무튼 그 소독차가 동네를 돌며 약을 뿜어주니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되는 기분이랄까? 나라에서 우리를 벌레로부터 지켜주고 있어, 뭐 그런 기분?ㅎㅎ





소독차가 왜 이렇게 반가울까?






우린 이렇게 매일같이 곤충과 벌레들과 살아간다. 밖에선 눈으로 확인하고, 집 안으로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제거하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그것들을, 앞으로도 겨울까지 쭈욱 만나야 할 텐데 어쩌지 하는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이곳의 삶이겠거니 하면서 어느 정도는 인정하며 지내고 있다.



앞으로도 너무 놀라지 않고 그들과 잘 지내면 좋겠다. 제발 집안에만 들어오지 마렴. 그럼 너희들은 안전하단다.






 



이전 17화 제주살이가 후회될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