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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도깨비불이오

그곳에 그분들에게 봄은 언제 올까

by 송명옥

의성 산불로 집이 타버린 지인을 찾아간다. '하늘의 뜻이라 생각할랍니다'는 문자를 보고 통화하지 않는다. 목소리를 듣기가 두렵다. 얼굴 보기는 더 힘들지만 지품 삼화리 그분의 과수원을 찾아간다. 골짜기 관동천 너머 산 아래 꺼먼 잔해 사이로 매캐한 냄새는 아직 남아 있다.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개울을 넘지 못한다. 그분을 보러 가지 못한다. 무슨 말이든 위로는커녕 아픔을 확인하지 않을까 두렵다.


울적하고 억울한 기분으로 지품 중학교로 간다. 전교생이 10명을 겨우 넘긴 상황이라 폐교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학교이다. 신안리 지품초, 지품중은 서북동쪽이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이다. 중학교는 산 쪽 둔덕이 살짝 그을리고 초등학교는 대나무 울타리가 타고. 정문에 서보니 주변 산들이 거무튀튀하지만 학교 건물은 다치지 않아서 교실 수업은 문제없는 듯하다.


면사무소에는 봉사자들과 구호 물품 운반하는 차들이 분주하다. 따개비마을은 몇몇 집들이 무사하던데 신안리는 불탄 집들이 듬성듬성하다. 솔방울에 불이 붙어 바람 타고 튀었다는 말이 실감 난다. 명자나무에 꽃이 듬뿍 핀 집에서 주인이 나오신다. '망백(望百)이오'라며 91세 노인께서 그날을 짚으신다. 온산에 불이 붙어 탈출하기 직전에는 마을이 뜨거웠다는 말씀이다.


송이생태공원 잔디와 가로수들도 군데군데 시커멓다. 불탄 잔디를 밟으니 구운 김처럼 파삭 스러진다. 자세히 보니 불탄 솔방울들이 있다. 요놈들이구나, 도깨비불처럼 이 산 저 산 이 집 저 집으로 튄 놈들이! 작다. 어린 방울들이 불붙어 화들짝 놀라 이리저리 튄 모양이다.


지품은 영덕 명품 송이 주생산지이다. 당분간 영덕 송이는 못 보겠네. 불타버린 복숭아나무, 불에 그을린 사과나무도 과일을 못 주겠고. 놀라서 입원한 지인의 부모님은 당분간 병원 신세, 집이 불탄 그분들은 쪽잠 신세. 봄꽃은 퐁퐁 피는데 도깨비불이 지나간 그곳에 봄은 언제 올까?


지품 송이 생태공원 잔디를 도깨비불이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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