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아가는 재미가 솔솔하지만

새로운 정보도 아름다운 느낌도 오래가지 못하는구나

by 송명옥

<단어 따라 어원 따라 세계 문화 산책>, 이재명 정문훈 지음, 2017년, 미래의 창, 264쪽


키오스크로 주문을 못하는 실버들이 많다고 한다. 더듬더듬 주문할 수 있지만 기다리는 뒷사람들에게 미안해서 포기하는 어르신도 있다고 한다. 나는 아들이 주문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 그럭저럭 이용한다. 새로운 정보를 몰라서, 알아도 익숙하지 않아서 실버들이 괴롭다.


美壽를 넘기니 새로운 것을 보면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며느리가 보낸 새 전기포트를 바로 쓰지 않는다. 주둥이가 긴 전기포트는 커피를 드립 하기에 편리하지만 익숙하지 않으면 조심스럽다. 받은 지 한 달이 지나서 포장 상자를 버린다. 이리저리 작동하며 1주일이 지나니 익숙해진다. 영혼을 담아서 말한다, "편해서 좋다. 고맙다."


<단어 따라 어원 따라 세계 문화 산책>. '어원'과 '문화'에 입맛이 당겼다. 샛노란 앞표지와 일곱 개나 널브러진 사진들에 입맛을 잃었다. 뒷 표지의 긴 정보들은 산만하고 설명하는 문체도 마뜩잖았다. 37개 단어를 알파벳 순서로 줄 세워 어원과 관련되는 세계 문화를 소개하는데 처음 aussie와 끝 zapato를 읽고 덮었다. 5년째 책장에 들이지 못하고 책상 위에 숙제처럼 밀쳐 두었다.


읽지 않아서 미안한 이 책을 다시 본다. 사진을 먼저 보고 글을 읽으니 술술 읽히고 재미도 생긴다. 'loo, 영국인 그들만의 화장실'을 읽다가 영국 전통 브랜드 '바버'를 검색하고 미술평론가 윤규홍 교수를 알게 된다. 'enfant 앙팡, 자유분방함으로 무장한 무서운 아이들'에서 어른은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 진정한 어른은 보다 성숙한 아이라는 구절을 발견한다. '몽생미셸'에 가고 싶고 동화 '플란더스의 개'를 다시 읽고 싶고 고디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


새로운 지식을 익혀도 곧 잊어버린다. 곧 잊을지라도 알아가는 동안은 황홀하네. <단어 따라 어원 따라 세계 문화 산책>를 읽으면서 검색하고 메모하고 정리하며 충만해진다. 부하듯 읽는 재미에 빠진다. 좋은 감정도 지속하지 못한다. 그래도 더듬더듬 해금을 연주한다. 연주하는 내 영혼은 맑은 느낌으로 가득하다. 낯선 것, 새로운 것을 피하지 말아야지. 건강한 실버가 아름답잖아.



keyword
이전 17화할멈과 전경린의 시절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