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달>, <홈 스위트 홈> 같은 소설 제목이 좋다. '사막'은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으로, '홈'은 건축물, 공동체의 복합적 이미지로 은유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전경린의 <사막의 달> <염소를 모는 여자> <메리 고라운드 서커스의 여인>은 제목이 호기심을 일으킨다. <사구미 해변>에서 외영은 "실제 삶이 없다면 풍경은 얼마나 지루한, 것이겠어요?"라고 말하고 이어서 '실제 삶이 없다면 영혼은 얼마나 지루할 것인가'라고 화자가 끼어든다. 화자의 서술은 사족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들을 읽다가 전경린의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만난다. 수상 경력이 화려해서 그녀의 단편소설집을 읽는다. <염소를 모는 여자>는 비유가 너무 많아서 덜컹거리고 <사막의 달>은 문장이 길어서 멈칫멈칫한다.초기 작품들은 컥컥 막혀서 최신 작품집 <굿바이 R>을 구한다. 비유는 여전히 귀한 맛이 없고 짧은 이야기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니 산만하다.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작가지만 다 읽지 않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집 <대성당>을 읽는다. 1980년대 미국의 단편 소설 르네상스를 이끈 작가의 작품들이다. 공간 이동이 없거나 적고 인물 수도 적어 깔끔하다. 묘사가 섬세해서 상상하는 재미도 있고 선명하게 기억된다. 천천히 아껴 읽는다. 평론가들이 극찬한 작품답다.
새해 일출을 보고 2025 첫 모닝커피를 준비한다. 원두는 갓 볶아 배달된 'winter solstice blend'이다. 동지를 지나고 겨울맛을 내는 '동지 조합'을 골라 본다. 맛도 향도 만족스럽다. 전문가의 조합답다. 당분간은 어설프게 싱글오리진을 고집하지 않아야지. 봄에는 '벚꽃 블렌딩'을 마신다.
내가 젊었을 때 전희경의 이야기들을 만났다면 다양한 여인들의 삶을 그려내는 솜씨와 열정에 박수를 크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젊은 나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건조하다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도 글도 시절 인연에 따라 생각과 느낌이 다르다. 하류에 이른 물은 천천히 흐른다. 살만큼 산 할멈의 어설픈 식자우환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