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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Dec 15. 2023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행복한 인생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바른 생각을 품는 것이다.



죽은 물고기는 물살을 따라 흘러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서 올라간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온 힘을 다해 헤엄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생명으로 가득한 인생은 비록 눈에 보이는 상황이 고통과 불안뿐이라도 그 흐름에 자기 생각과 꿈을 맡기지 않는다. 외부 환경이 어떻든 소중한 꿈을 끝까지 붙들고 있고, 행복을 위해서 바르고 긍정적인 생각들로 내면을 채운다. 생각 속에 자신의 바른 신념을 심으면 그 신념대로 삶이 흘러간다. 하지만 생각 속에 세상이 전하는 부정적 신념을 심으면 세상이 원하는 대로 우리 삶이 흘러간다. 우리가 생각 속에 어떤 신념을 심는가에 따라서 삶의 주인이 결정되는 것이다.



인생은 거대한 퍼즐과 같다. 수천, 수만 개의 퍼즐 조각을 가장 잘 맞추는 사람은 완성된 그림을 보았고, 뚜렷이 기억하는 사람이다. 생각 속에 자기만의 인생 그림을 품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그림대로 퍼즐 조각을 맞추어 나간다. 결국, 생각대로 삶이 완성된다. 반면 자신의 인생 그림이 무엇인지 모르면 인생 퍼즐을 완성할 수 없다.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인생 퍼즐을 멋대로 맞추고는 그에 맞춰서 인생을 살라고 한다. “생각하는 대로 삶을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가 한 말이다. 외부조건에 의해 살아지는 삶이 아닌 원하는 삶을 사는 방법은 원하는 생각만을 품는 일이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작가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서 신문사에 취직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동안 그 남자가 수없이 들었던 말이란 이런 말이다. “이따위가 글이야? 이런 글을 누가 읽어?” 남자는 신문사에 오래 있지 못했다. 전쟁에 자원했다가 두 다리를 심하게 다쳤고 신경쇠약에 힘든 날을 살았지만, 남자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수년 동안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냈고, 남자에게 돌아온 건 거절 혹은 혹평뿐이었다. 부모도 남자를 포기하고 집에서 내쫓았다. 돈 한 푼 없던 남자는 빈민굴에서 글을 썼다.



남자에게 자신의 글은 소중했다. 그렇게 소중히 쓴 수십 편의 원고를 전부 잃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심지어 모든 주변 사람이 작가의 꿈을 포기하라고도 했다. 잡지사는 남자의 글을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며 원고료를 주지 않는 일도 있었다. 꿈을 품기 시작하여 10년 넘게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남자가 쓴 소설은 출판사로부터 많은 거절을 받았고, 동료작가들로부터 비아냥의 말을 듣기도 했다. 어쩌다 출판된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전기, 가스, 수도가 없는 빈민굴에 살면서 길가의 비둘기로 끼니를 때우는 삶도 있었다.



이 남자는 정말로 턱도 없는 꿈을 꿨던 것일까? 일찌감치 헛된 꿈일랑 포기하고 남들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삶을 살아야 했을까? 10년 넘게 꿈 한 자락 펼치지 못하고 힘겹게 살았던 남자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이 남자는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언론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우리가 잘 아는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을 집필했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 했다. 주변인의 말처럼 일찌감치 소설가의 꿈을 포기했다면 기자로서의 삶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천재 작가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지금 상황이 아픈 고통의 연속이거나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겨진다면 어떻게 할까? 그토록 바라는 삶은 꿈 한 자락 펼치는 핑크빛 인생인데, 눈앞의 현실이 재투성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인생이 쓰라린 상처투성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생각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꿈을 향한 간절한 생각, 아름다운 인생을 펼쳐내는 거룩한 생각을 늘 가슴에 품는 일이다. 우리는 맨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누구나 귀한 재능 씨앗을 마음 밭에 하나쯤 심고서 이 세상에 왔다. 세상 소리에 억눌리고, 세상 시간에 매여서 소중한 재능 씨앗을 돌보지 못했을 뿐이다. 재능 씨앗은 마음 밭에서 싹트길 기다리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음을 향한 관심은 재능 씨앗이 자랄 수 있게 하는 따스한 봄볕과 같다. 좋은 생각, 좋은 신념은 재능 씨앗에 양분을 전하는 맑은 물줄기와 같다. 꾸준한 관심으로 봄볕을 비추고, 좋은 생각과 신념을 부어준다면 재능은 어느새 우릴 빛내는 열매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이 꿈을 품는 일이다. 멋진 꿈을 잘 품어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 자세가 있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버린 부정적인 생각 패턴을 버리고 새롭게 하는 일이다. 이 순간의 생각이 이후의 인생을 만든다. 행복한 삶의 주인이 되는 생각은 세상의 부정적 신념에 당당히 맞설 때 더욱 힘을 낸다. 부정적 신념조차 긍정적 신념으로 바꾸는 힘이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의 힘이다.



아주 흔한 부정적 생각 패턴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 부정적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남은 인생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첫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비판을 대하는 마음 자세를 조금만 달리하면 삶의 품격은 훨씬 올라간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말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 진리여야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경험하는 비판은 그 기준이 말하는 사람 개인적 생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판을 들었을 때 고마움 대신 서러운 마음이 들고, 도움이 아닌 상처가 되는 것은 내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그의 생각 때문이다. 비판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타인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비판하기를 즐기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 이 때문에 자신을 포함한 세상 사람은 비판하는 자가 되었다가 비판받는 자가 되기를 반복한다. 비판이 사라질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 태도, 즉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무엇일까? 남의 비판을 당당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말이야 쉽지. 비판하는 말을 들으면 그 순간 마음이 상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요. 날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미워지죠”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을 쉽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연습이다. 비판을 받았을 때의 마음 태도를 다음과 같이 연습할 수 있다.



하나, 비판을 듣자마자 가슴이 요동치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면 시선을 돌리고 10초간 기다리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둘, 심호흡을 천천히 5번 정도 하면서 요동치는 가슴을 가라앉히자. 호흡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안정을 찾고 분노가 가라앉는다. 셋, 속으로 이런 말을 대뇌이자. ‘지금 당신 머릿속에는 온통 부정적 생각으로 가득하군요. 마음이 괴롭겠어요. 안타깝네요’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타인의 비판을 거절하면 그 비판은 상대방에게 계속 머물러있다. 우리를 향한 그 어떤 비판도 우릴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비판하기를 특히 즐기는 사람은 삶이 불행한 경우가 많다. 우리 역시 비판하길 즐겼다면 그때의 삶이 결단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판자에게 세상은 부당한 것투성이다.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은 결코 남을 비판하지 않는다. 마음이 사랑과 충만으로 넘치면 그 삶이 고마워서 다른 이에게 더욱 관대한 마음을 가진다. 눈앞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비판 대신 칭찬을, 비난 대신 위로를 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의 특징이다. 누군가 우릴 비판한다면 그 말에 발끈하기보다는 그 불행한 사람을 안타까워하자. 이리저리 비판하느라 관계가 끊어져 나가는 그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분노하는 마음보다 더욱 지혜로운 마음이다.



우리가 벗어나야 할 부정적 생각 패턴 둘째, ‘불안’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불안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이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생기면 못난 자신을 탓하거나, 냉혹한 현실을 탓했다. 못난 사람, 냉혹한 현실은 없다. 불안이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 때문에 잘못 인식했을 뿐이다. 불안은 나를 탓하고 현실을 탓하라고 생겨난 감정이 아니다. 지금이 도약할 시점임을 알려주는 동기부여 감정이 바로 불안이다. 누구는 불안 때문에 좌절하지만, 누구는 불안 덕분에 한걸음 도약한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 때 좌절과 도약 중 어떤 선택을 해야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차동엽 신부님의 저서 『뿌리 깊은 희망』에서 ‘불안의 쓸모’ 관한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의 한 과학자가 독특한 동물 실험을 통해서 불안이 얼마나 필요한 감정인지를 증명했다. 동물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 동물들에게 안락한 삶의 환경을 제공했다. 넘쳐나는 음식, 맑고 상쾌한 공기, 적이 사라진 안식처 등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두 번째 그룹 동물들에게는 기쁨은 물론 걱정도 함께 있는 삶의 환경을 제공했다.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을 땐 더없이 기쁘다. 하지만 맹수가 공격하면 재빨리 피해야 하며,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야 한다. 두 환경의 동물들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첫 번째 그룹의 동물들은 훨씬 빨리 병들어서 죽어갔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환경, 적의 공격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평화로운 환경이 그들을 병들게 한 것이다. 적이 없으니 자신의 목숨을 살리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사라졌다. 달릴 필요가 없는 삶, 노력이 사라진 삶이 그들을 병과 죽음으로 이끌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의 동물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적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달려야 했고, 불안과 긴장은 자신을 살리는 섬세한 감각이 되었다. 기쁨과 불안이 조화를 이룬 삶이 그들을 생명으로 이끌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쁘고 풍요로운 삶만이 우릴 행복으로 이끄는 건 아니다. 불안이 사라진 삶, 노력과 도약이 필요 없는 삶은 우릴 나태하고 나약하게 만들 뿐이다. 『레미제라블』 등 많은 문학작품을 남긴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이런 말을 했다. “램프를 만든 건 어둠이었고, 나침판을 만든 건 안개였고, 탐험을 하게 한 건 배고픔이었다. 그리고 일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의기소침한 날들이다” 적당한 불안과 그로 인한 의기소침은 삶에서 꼭 필요한 감정이다. 불안이 닥칠 때, 도약할 시기임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릴 행동하게 만드는 활동에너지는 긍정적인 생각습관에서 나온다.



지금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원하는 삶이 꿈을 이루는 삶,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한 삶이라면 그런 삶을 끊임없이 생각하면 된다. 행복한 인생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진실 된 생각만을 품는 일이다. 남들이 자기식대로 내리는 평가나 세상이 만들어낸 불안한 분위기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다른 누군가의 생각대로 삶을 살면서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독단적 견해에 동요되지도 마라. 다른 사람의 의견 때문에 당신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안 된다” 한정된 시간과 보이는 세상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대신 무엇으로 시간을 채우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지는 선택할 수 있다.  



매 순간의 선택에 따라서 불행도 내 삶이 되고 행복도 내 삶이 된다. 불행과 행복은 외부조건에 의해서 정해지는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의해서 정해지는 주관적인 가치다. 행복한 삶의 시작은 내면에 귀한 재능 씨앗을 품고 있음을 진심으로 믿는 일, 재능 씨앗이 아름다운 열매가 되도록 따뜻한 관심을 비추는 일이다. 좋은 생각들로 내면을 채우고 좋은 감정 에너지를 비축하는 일도 잊으면 안 된다. 귀한 생명은 사랑을 먹고 자라고, 귀한 꿈은 사랑으로 감싼 생각을 먹고 자란다. 가장 소중한 사람,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타인과 세상을 자신처럼 사랑하게 된다. 이런 삶이 진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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