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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Feb 16. 2024

희망, 역경이 가득한 곳에는 희망도 함께 있다.

희망, 역경이 가득한 곳에는 희망도 함께 있다.



인생 역경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역경이 ‘인생 저주’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역경이 ‘인생 희망’이 될 뿐이다. 이 둘의 차이는 뭘까. 역경에 맞닥뜨렸을 때 이를 대하는 모습이 다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앞을 보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는 사람. 이들은 인생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자신을 안타까워한다. 눈을 감은 만큼 고통이 주는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반면 삶의 무게가 버거워도 버틸 수 있음을 믿고 두 눈 크게 뜨는 사람. 이들은 고통 뒤에 숨겨진 희망을 찾는 사람이다. 희망을 믿는 사람은 역경이 곧 지나갈 걸 안다. 이 때문에 고통도 나름 견딜 만하다. 



희망을 품는 건 마음에 가능성을 심는 일이다. 역경을 견딜 가능성,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을 가능성, 고난 때문에 성장한 자신을 볼 가능성이다.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서 무지개를 보듯 역경이 지나간 자리에서 새로운 자신을 보길 우리는 기대한다. 희망은 칠흑 같은 어둠에서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빛과 같다. 어두울 때 빛이 보이는 듯, 온갖 역경으로 눈앞이 깜깜할 때 희망의 빛이 보인다. 우리는 모두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럼 에도 희망을 못 보는 이유는 역경의 힘겨움에 눈을 감아서 희망이 빛나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우릴 빛나는 사람이 되게 할 희망, 그 빛을 다른 사람과 나눌 희망은 이미 우리 가슴에 담겨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역경이 있다. 특별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서 희망을 세상과 나누는 사람이 있다. 호주의 목회자이자 동기부여 강연자 닉 부이치치다. 닉 부이치치는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었다. 자라는 동안 가족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처음 부모님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거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행복하게 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하나님께서 빨리 데려가시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저서 『닉 부이치치의 허그』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이 말을 처음 부모님께 들었던 그는 얼마나 아팠을까. 하지만 지금의 닉 부이치치는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세상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닉에게 ‘특별한 신체’는 역경이 아니라, 감사한 삶의 일부였다. 



닉 부이치치는 처음부터 자신의 삶에 감사했던 건 아니다. 그 어린 나이에 너무나 힘들고 절망해서 자살까지 시도했다. 혼자서 밥을 먹는 일,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는 일, 이런 평범한 일조차 부탁해야 하는 자신이 짐처럼 여겨지고 끔찍했다. 더욱 힘든 건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직장생활,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 아내와 아이를 지키는 일 등이 닉 자신에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희망을 배워야 할 나이에 그는 절망을 먼저 배웠다. 학창시절 가장 큰 소원이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이 그에게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하나님 팔 하나 더 주시는 게 그렇게 아까우셨어요?”라고 원망하던 그가 지금은 세상에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닉이 죽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두 눈을 크게 뜨고 희망을 찾은 건 사랑으로 함께한 가족 덕분이다. 부모님께서는 닉이 평범한 일상을 스스로 누리길 원하셨다. 삶에서 ‘제한’이나 ‘한계’는 없다는 걸 알려주셨고, 장애라는 울타리에 스스로 가두는 걸 원치 않으셨다. “닉, 넌 정상적인 친구들과 놀 수 있어. 단지 몇 가지 사소한 신체조직이 없을 뿐이야” 닉의 부모님은 닉이 남들과 다른 신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난 할 수 없어’ 이렇게 변명하는 걸 원치 않으셨다. 닉은 세상 사람을 향해 말했다. “깊은 근심과 두려움 때문에 희망을 잃는 건 팔다리를 잃는 것보다 더 위험합니다” 역경이 지나간 자리엔 싹이 튼다. 우릴 감동으로 감싸는 ‘희망’이라는 싹이다.



‘삶이 고단해요. 내가 짊어진 역경은 수천 톤이나 되는 쇳덩이 같아요. 일어설 수도, 눈을 뜰 수도, 희망을 볼 수도 없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힘든 마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애쓰며 살고 있다면 희망을 품고 있다는 증거다. 세상을 집어 삼킬듯한 거친 폭풍 중심에는 ‘고요함’이 있다. 단단하고 거대한 바위 중심에는 예술가의 손길로 꺼낼 수 있는 ‘아름다운 조각품’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릴 집어삼킬 듯한 역경 중심에는 환하게 빛나는 ‘희망’이 있다. 폭풍우가 걷히면 고요함은 모습을 드러내고 예술가가 바위를 깎아내면 아름다운 조각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역경을 살아내면 우릴 빛낼 희망이 활짝 웃으며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역경 속에서 희망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 간단하지만 효과만점인 방법이 있다. 바로 ‘목표선언’이다. 우리가 꼭 이뤄야 할 목표를 선언하면 역경의 순간이 곧 희망의 순간이 된다. 특히 눈으로 볼 수 있는 목표, 머리로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목표라야 한다. 목표는 거창한 성공이나 부가 아니어도 된다. 이루었을 때 감사와 감동이 흘러넘치는 목표가 더 아름답다. 가슴을 뜨겁게 만들 목표를 선언했으면, 매일 그 목표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자. 목표가 날마다 생생하게 기억되도록. 영혼에 뿌리박힌 목표는 역경이 힘겹게 여겨질 때마다 앞으로 한 발짝 내딛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차동엽 신부님 저서 『뿌리 깊은 희망』에 사냥개 이야기가 나온다. 30마리 사냥개가 숲에서 토끼를 쫓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냥개들을 점점 지쳤다. 어느 순간 29마리 사냥개는 풀숲에 쓰러지고 오직 한 마리 사냥개만 끝까지 달렸다. 이유는 끝까지 달려간 그 사냥개만이 토기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눈앞에 토끼가 있다는 걸 본 사냥개는 아무리 힘들어도 오직 토끼만을 보고 달렸다. 그에게 토끼는 망상 따위가 아닌, 확실한 목표였다. 주저앉은 29마리 사냥개는 토끼를 쫓은 게 아니라 다른 사냥개들을 따랐을 뿐이다. 토끼라는 확실한 목표를 마음에 담은 사냥개는 토끼가 아무리 빨라도, 자신이 아무리 지쳐도 포기하지 않았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목표, 마음으로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목표는 이토록 중요하다. 지친 순간에 마지막 힘을 내게 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희망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역경 속에서 희망을 품게 하는 ‘목표선언’은 어떻게 하면 될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무엇을 꺼낼까?’ 목표 형상에 집중하는 거다. 둘째, ‘어떻게 꺼낼까?’ 목표를 꺼내는 방법, 목표를 이루는 방법에 집중하는 거다. 셋째, ‘누구와 나눌까?’ 목표를 이루었을 때 감동과 환희를 함께 나눌 사람에 집중하는 거다. 혼자만의 즐거움을 채우는 건 목표가 아니다. 욕심이다. 가족, 이웃,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을 나누는 목표만이 우릴 역경에서 이겨낼 힘을 준다. 



역경 속에서 희망을 품게 하는 목표선언 첫째, 무엇을 꺼낼까? 꺼내고 싶은 목표가 어떤 모습인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거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모습, 선명한 색채, 목표를 이루고 있는 감동의 순간을 되도록 생생하게 그리자. “형상은 처음부터 돌 속에 있다. 나는 단지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냈을 뿐이다” 르네상스 시대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한 말이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 마음에 깊은 감동을 전해왔다. 미켈란젤로는 매번 대리석 조각 속에 숨겨진 형상을 보았다고 했다. 그 후에 형상이 나올 때까지 수없이 많은 망치질에 오로지 집중했다. 



미켈란젤로를 천재 예술가로 부른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면 나를 천재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에 집중하는 동안 그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잘 때도 장화를 신고 잤기에 다리가 부으면 칼로 장화를 잘라야 했다. 이런 순간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세계적인 천장 벽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감동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들을 완성하는 수년의 시간이 참으로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고통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미켈란젤로처럼 우리 역시 역경 속에서 원하는 목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음의 눈으로 목표를 선명하게 보면 된다. 



역경 속에서 희망을 품게 하는 목표선언 둘째, 어떻게 꺼낼까? 방법을 모를 때, 방법을 간절히 찾고 싶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다. 바로 방법을 물어보는 거다. 좋은 사람, 좋은 책, 심지어 자신에게도 방법을 물어볼 수 있다. ‘어떻게 할까?’ 우리 뇌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질문을 받으면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활동한다는 거다. 심지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는 질문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속에 이미 답이 있음을 믿고 스스로 질문해보자. ‘어떻게 내 목표를 꺼낼까?’ 오래전에 잃어버린 귀한 반지가 갑자기 눈앞에 보이듯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는 기적을 경험한다.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있다. 토니 로빈스 저서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서 소개된 한 유대인 이야기다. 스타니슬라브스키 레히라는 유대인은 가족들과 함께 크라코우에 있는 죽음의 수용소에 보내졌다. 눈앞에서 온 가족이 죽고, 자신도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탈출을 시도해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탈출할 수 있지?’ 자신 말고는 답을 말해줄 사람도, 책도 없다. 처참하고 괴로운 나날, 고통과 두려움의 나날에 집중하는 대신 ‘탈출’이라는 뚜렷한 목표와 ‘방법’에 집중하니 그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벌거벗겨진 수많은 시체가 트럭에 옮겨질 때 그 유대인도 옷을 벗고 시체처럼 트럭에 죽은 척했다. 시체를 실은 트럭이 어디를 향할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일이 기다릴지 모를 두려움, 시체 속에 파묻힌 고통, 시체 썩는 냄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탈출을 시도한 유대인의 마음에는 수용소에 남겨진 다른 유대인의 마음에 없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분명하고 간절한 목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에 선명하게 그린 목표와 해결을 구하는 질문 덕분에 그는 살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옥에서도 살아난다. 역경을 지혜롭게 살아낼 가장 좋은 답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니 질문으로 답을 찾자. 



역경 속에서 희망을 품게 하는 목표선언 셋째, 누구와 나눌까? 목표를 이루었을 때 진정한 감동과 기쁨을 주는 이유는 함께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나 홀로’의 삶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밥 먹고, 술 먹고, 쇼핑하고, 여행하는 삶이 문화처럼 되고 있다. 우리는 홀로 있을 때 마냥 기쁘고 행복하기만 할까? 세상에 홀로 살아남았다면 모든 것을 가졌다 한들 기쁠까? 사람은 ‘홀로’가 아닌 ‘함께’일 때 더욱 빛나고 생명이 넘친다. 자신의 즐거움만 채우기보다 함께 즐거움을 채울 수 있을 때, 우리 목표는 더 가치 있다. ‘진정한 가치’는 나 때문에 활짝 웃는 ‘당신의 미소’에 있기 때문이다. 



헨렌 켈러가 말했다. “행복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적에 충실했을 때 이루어진다” 홀로 만족했을 때 잠깐은 기쁠 수 있다. 그 기쁨은 곧 사라지고 마음에는 허무함만 남는다. 함께 기쁠 수 있는 일을 해냈을 때는 그 기쁨이 오래가고, 이는 우리가 다른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자신을 위한 멋진 집, 차, 성공도 좋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풍요로움은 따뜻함이 오래간다. 자신의 멋진 몸을 위한 다이어트도 좋지만, 건강한 몸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우리 몸은 더 아름답다. 



누구나 겪는 역경이 ‘인생 저주’가 아닌 ‘인생 희망’이 되는 건 힘듦 속에서 목표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마음속 감춰진 목표는 ‘무엇을 이룰까?’ ‘어떻게 꺼낼까?’ ‘누구와 나눌까?’를 진심으로 고민했을 때 모습을 드러낸다.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여정은 홀로 하는 여정이 아니다. 출발은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내면소통’이지만, 결승선에는 나를 응원하고 기다리는 ‘행복한 타인’이 있다. 행복은 ‘홀로’가 아닌 ‘함께’일 때 크기가 수십 배, 수백 배 커진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행복은 우리가 또 다른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준다. 어떤 역경과 고난에도 밀고 나갈 강인함도 함께 준다. 역경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희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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