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선언은 삶의 의미를 찾겠다는 의지 선언이다"
‘내년은 올해보다 나을까?’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돈은 많이 벌까?’ 미래가 궁금하다. 이 순간 삶이 답답해서 때때로 철학관이나 점쟁이를 찾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운명, 사주, 올해 운세를 아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처음 나를 본 사람이 과연 내 운명을 가장 잘 아는 게 맞을까? 그들이 말하는 이론으로 평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까? 우리가 살아갈 삶과 운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오늘 처음 마주한 점쟁이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매일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건지 예언하고 있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힘들 거야. 물가가 이렇게나 오르는데. 어떻게 살아?’ ‘언제쯤 이 고통이 지나갈까, 영원히 날 힘들게 하겠지. 죽어야 끝날지도 몰라’ ‘난 재주도 없고 끈기도 없고 모든 게 엉망이야. 내 삶은 희망이 없어’ 이런 말로써 원치 않는 미래 삶을 상상하고 날마다 부정적인 미래를 예언한다. 그동안 삶이 힘들었던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했던 부정적인 예언이 원인일 수 있다. 지금껏 부정적인 말로써 암울한 미래를 예언했다면, 이제는 긍정적인 말로 밝은 미래를 예언해보자. 우리 삶을 밝은 길로 이끄는 건 내일을 향한 ‘긍정 선언’이다.
긍정을 선언한다는 건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걸 말한다. ‘간절히 이루고 싶은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 또한 삶의 의미가 된다. 삶의 의미가 뚜렷한 사람은 힘든 상황에서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절망과 고통뿐인 상황에서도 열려있는 작은 문을 발견한다. 이유는 미래에 완성하고 싶은 어떤 것, 인생에서 꼭 지켜야 할 중요한 어떤 것을 가슴 깊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와 낙담 한번 없는 인생은 세상에 없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긍정을 선언하면서 찾은 삶의 의미가 이런 실패와 낙담 속에서 시작할 용기를 준다는 사실이다. 억울하고 분한 순간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좌절과 고통 속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는 것이 ‘삶의 의미’들이다. 인생의 소중한 가치, 즉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생명의 주문은 바로 매일 나에게 건네는 ‘긍정 선언’이다.
오늘 하루 긍정을 선언하면 특별한 하루를 선물 받는다. 그 특별한 선물이란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고 소중한 일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사과 한입 베어 물면 사과에 깃든 정성이 맛으로 느껴지는 특별함. 따뜻한 차 한잔에서 생명이 주는 평온함이 느껴지는 특별함. 오늘따라 퉁명스러운 남편이나 아내 혹은 연인의 눈빛에서 지친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특별함. 지금은 약해지신 부모님이지만, 한때 나보다 더 젊고 아름다운 분이셨음을 새삼 깨닫는 특별함이다. 나를 위해서 아름다운 젊음을 대가로 바치신 부모님의 희생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에 박힌다면 이 특별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특별함과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면 우리 마음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 당장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고 인생을 억울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대적이라 믿었던 환경이 사실은 나에게 지극히 호의적이었음을 느낄지도 모른다.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긍정 선언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다. 우리 인생을 ‘행복’이라고 선언하면 ‘밥 한 끼’는 ‘따뜻함’이 되지만, 인생을 ‘절망’이라고 선언하면 ‘밥 한 끼’는 ‘목에 걸린 가시’가 된다. 우리가 선언해야 할 인생은 절망이 아닌 행복이지 않을까.
우리는 즐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 즐기는 삶, 행복한 삶을 위한 긍정 선언은 어떻게 하면 될까? 마음으로 ‘난 잘 할 수 있어. 멋지게 해낼 거야’라고 외치는 것도 좋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우리 마음이 긍정의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드는 거다. 긍정의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최고의 마음은 이런 마음이다. 죽음 직전에 다시 인생을 살 기회를 선물로 받은 마음이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신이 우리에게 다시 살 기회를 준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까? 지금 삶이 그렇게 받은 기적의 시간이라면, 이 삶에서 찾아야 할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의 삶이 기적처럼 받은 선물이라면 삶의 의미를 찾는 건 더 쉬울 수 있다. 삶이 끝나는 순간에 가장 후회할 뻔한 일을 되짚어 보면 된다. 인생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기 싫은 일이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더 많이 사랑하는 일. 그 사람에게 더 많이 베푸는 일. 소중한 그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더 적게 하는 일. 상처를 줬다면 그들을 안아주는 일이다. 삶에서 필요한 의미는 각자 다르다.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이루고 싶은 가치도 다르다. 그러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신이 죽음을 앞둔 우리에게 “왜 굳이 다시 살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할 수 있는 마지막 답변이 바로 삶의 의미다.
2013년 영화 「어바웃 타임」에 인생을 다시 사는 남자가 있다. 주인공 팀이다. 팀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팀의 아버지를 포함에서 그 집안 남자들만 가지는 능력이란 과거 원하는 시간대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어두운 곳에서 주먹을 꽉 쥐고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를 떠올리면 어느새 원하는 시간으로 가 있다. 우리도 과거 어느 순간만큼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거다. 팀은 시간여행을 하면서 엉망일 뻔했던 순간을 멋진 순간으로 만든다. 팀의 아버지는 아들 팀이 시간여행 능력을 좀 더 의미 있게 사용하길 원했다.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팀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공식을 말한다.
팀의 아버지가 말한 행복한 삶의 공식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사는 거다. 상사에게 혼나는 날, 시간에 쫓겨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는 날, 지각할까 봐서 뛰어야 하는 날 등.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어’라며 잠이 드는 날이 평범한 날이다. 둘째는 그런 평범한 하루를 똑같이 다시 사는 거다. 같은 일상을 다시 살 때는 다른 것들이 보인다. 처음엔 긴장하느라 보지 못했던 세상이다. 상사에게 혼나느라 놓친 동료의 위로. 시간에 쫓기느라 놓쳤던 매장 직원의 친절한 미소. 늦을까 봐 뛰느라 놓친 파란 하늘. 같은 하루를 다시 살 때 비로소 보이는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다시 사는 하루는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 있음을 알아보게 만든다. 특별한 하루, 행복한 삶이란 일상에서 놓치는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삶이다. 오늘 하루가 소중했다면, 그 삶 속에 있었던 다른 사람은 소중한 대접을 받은 하루가 된다. 하루 중 세상을 향해서 보낸 미소, 인사, 격려, 나눔 등은 우리는 물론 상대방 마음에 행복을 채우는 일이다. 달라이 라마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행복은 당신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우리 삶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도 행복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다.
긍정을 선언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면 인생은 분명히 변한다. 단, 마법을 부린 것처럼 삶이 갑자기 바뀌는 건 아니다. 변화는 3단계 과정을 거쳐서 천천히 일어난다. 1단계,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사람은 오랜 것에 권태를 느낀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는 ‘권태’에 빠지고, 직장 생활이나 가사 일을 오래 한 사람은 하던 일과 권태에 빠진다. ‘권태’는 함께 한 대상이 싫어진 마음이다. ‘권태’ 대신 ‘소중함’이라는 의미를 찾으면 싫어진 마음이 ‘미안함’이 되고 ‘미안함’은 곧 ‘고마움’으로 변한다. 삶의 의미를 찾은 덕분에 그동안 보지 못한 다른 걸 보기 때문이다.
소중함을 찾으면, 남편이나 아내가 내뱉은 짜증 섞인 말투에서 이 한마디가 들린다. ‘내 마음이 아파서 그래’ 직장 생활이나 가사 일 때문에 마음속 분노가 폭발했을 땐 내가 이런 마음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동안 내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구나’ 우리 마음이 들렸다면 소중한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위로의 말, 따뜻한 말을 건네자. 따뜻한 말 덕분에 오늘 하루는 견딜만한 하루가 되고, 고마운 하루가 된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면 마음속 권태는 가라앉고 고마움이 서서히 떠오른다.
긍정 선언 이후 변하는 2단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긍정을 선언하기 전에는 삶이 ‘한숨’과 ‘탄식’뿐이었다면 긍정을 선언한 후에는 삶이 ‘의지’로 채워진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거다. 삶의 의미를 모를 때는, 고통이 들이닥칠 때 이런 말을 한다. ‘왜 나만 힘들게 일하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삶의 의미를 찾고 나면 인생 방향은 물론 의지가 달라진다. 태도가 변하는 거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까짓것 해보지. 난 잘 할 수 있어’ 인생 방향을 다시 잡고, 삶을 의지로 채우면 어떤 역경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심지어 그 역경이 죽음과 맞먹을 정도라 할지라도 살아낼 에너지를 만든다.
로고 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런 내용을 밝혔다. “내가 나치수용소에 있을 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아는 사람, 즉 삶의 의미가 있는 사람은 더 오래 살았다” 살아야 하는 이유, 삶의 의미가 있는 사람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록 현실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충분히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삶의 의미를 찾고 살아갈 방향을 찾는다면 다른 삶이 펼쳐진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조차 ‘삶의 의지’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현실에서 우리는 더욱 가능하다. 삶의 태도가 바뀌면 우리 미래도 바뀐다.
긍정 선언 이후 변하는 3단계, 고난에서 행복을 찾은 사람이 된다. 고난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긍정을 선언하기가 힘들다. 이유는 지금의 고난이 영원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고난은 없다. 고난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이 고난 속에서 살게 할 뿐이다. 긍정 선언은 행복을 찾고 말겠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삶이 가장 힘든 순간에 간절함의 크기도 가장 커진다. 이런 간절함이 고통 속에서 달콤한 열매를 맺게 한다. 실제로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삶을 이룬 사람이 있다. 2007년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가 그런 사람이다.
「행복을 찾아서」의 주인공, 크리스는 변변한 학벌도, 직업도 없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아들과 살던 집에서도 쫓겨난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웠던 날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을 거다. 노숙자를 위한 쉼터에서 아들과 겨우 생활하면서 크리스는 주식 중개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정식으로 중개인이 된다는 건 크리스에게 간절한 소망이었다. 영화 후반부에는 크리스가 20명의 인턴 중에서 단 한 명의 정식 중개인으로 뽑히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아내가 떠난 후에도, 집주인에게 쫓겨난 후에도 크리스는 절망 대신에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삶에 대한 간절함이 행복을 뒤쫓게 한 거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사실 실존 인물이다. 현재 미국의 유명한 투자사의 대표이자, 성공한 사업가 크리스 가드너다. 과거의 그는 너무 가난해서 14살 아들과 노숙을 했다고 한다. 가난한 크리스에게 삶은 간절했다. 간절함이 있는 사람은 현실이 비관적이더라도 마음에 행복의 씨앗을 심는다. 절망 속에 외치는 한 마디 긍정이 그들이 살 힘을 주기 때문이다. “세상은 당신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무대입니다. 거기서 귀한 진주를 찾는 일은 당신에게 달렸어요” 크리스 가드너가 한 말이다. 힘들수록 간절해진다. 간절할수록 기회를 보는 눈이 밝아진다. 간절한 순간 우리가 외쳐야 할 말은 우리 삶을 행복으로 채울 긍정의 말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다. 하루를 바쁘게 사느라, 긴장하며 사느라 행복한 순간을 놓쳤을 뿐이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짧은 시간을 원하는 순간들로 채우기 위해서는 지금을 다시 사는 것처럼 한순간의 귀함을 기억하는 거다. 바쁜 와중에 여유를 가지고 삶을 돌아보고, 놓치고 있는 삶의 의미가 있지는 않은지 되새기는 거다. 삶이 끝나는 순간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함께 웃었고, 기뻐했고, 행복했는지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사는 인생을 잘 산 셈이다. 특별한 하루가 되는 삶,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삶은 오늘 하루 긍정을 선언하면서 시작하는 삶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은 외치고 있다. 행복하고 싶다고. 나도 잘 살고 싶다고. 그러니 힘든 나에게 따뜻한 격려 한마디만 해달라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한마디는 나를 향한 긍정 한마디다.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어. 내가 찾아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내가 행복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행복을 품은 나는 소중한 사람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