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by 김수현

[노인과 바다]는 고기 잡는 것을 업으로 하는 한 노인이 홀로 먼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는 사투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그의 옆에는 소년이 있지만, 노인은 운이 다했다고 생각하는 소년 부모님의 만류로 그는 혼자 승선하게 됩니다. 그렇게 떠난 바다에서 노인은 큰 청새치를 만나 아주 좋아했지만,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때로 인해서 결국 청새치의 머리와 꼬리만 가지고 다시 돌아오게 되죠.


하지만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34)


노인 배에 오르면서 아주 만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운을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에게 운이 찾아왔을 때 받아들일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었죠. 그렇게 노인은 지금까지 자신의 낚시 경험을 이용하여, 약간의 운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청새치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청새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였죠.


하지만 고기 놈은 얌전하게 제 계획에 따라 착착 움직이는 것 같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저 놈의 계획이란 게 도대체 뭘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 계획은 어떻게 짜야 하나? 엄청나게 큰 놈이니까 저놈 계획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밖에. (61)


노인은 청새치를 잡으려 노력하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 과정에서도 최선을 다합니다. 자신이 가진 방식으로 청새치를 어르기도, 지친 몸이지만 꾸역꾸역 참아내기도, 그렇게 청새치가 잡히기를 기다립니다. 조바심이 나서 청새치를 물속으로 들여다볼 법도 하지만 정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방식,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이용하여 일상을 그리워하면서도 절대 청새치를 놓아주지는 않죠. 고군분투 끝에 그는 결국 청새치를 잡는 것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때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노인은 상어와의 전쟁을 마주하게 됩니다. 상어 한 마리를 마주할 때마다 청새치의 살점은 점점 더 줄어들고 노인은 지쳐갑니다. 하지만 끝내 청새치를 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점점 줄어드는 청새치를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되기를 기다렸던 거야,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 당당하게 사태를 받아들여야지."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도 없고, 지금 이 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그렇게 그는 결국 청새치의 머리와 꼬리만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는 것이지요.



바다 위에서 만난 청새치와 상어 때 그리고 청새치를 지키기 위한 노인의 고군분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노인이 운에 대해서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을 안다는 것과,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해서 말하는 장면을 보고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청새치를 놓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채 끝까지 지키려는 모습에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노인은 왜 청새치를 놓지 못했을까? 동시에 청새치를 다 잃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와 편안하게 사자꿈을 꾸면서 잘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노인과 바다는 잔잔하기로 유명한 소설이지만 저는 그 속에서 삶의 치열함을 보았습니다. 유유자적하면서도 얼마나 치열하게 나아가는지. 중간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답니다. 청새치를 놓고 도망가면 되지만, 그러지 못하는 노인의 마음에 공감이 되었거든요.



노인에게 청새치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청새치는 그가 그에게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증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뭐라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런 사람임을 본인에게 보여주는 것 말이죠.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소중해서 놓지 못할 것, 혹은 용납이 안 되는 무언가가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 자는 비록 완전한 것을 가지지 못했지만, 나는 더 피곤하고, 쉬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타격이었지만 웃으면서 편하게 잘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내 마음에 들도록 꼼꼼하게 하고 싶은 제가 마음이 여유를 좀처럼 가질 수 없을 때에는 [노인과 바다]의 노인을 떠올립니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가고 있고, 그 뒤부터는 상어 때가 오든 고래가 오든 그때부터는 임기응변에 맡겨둘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 뒤에 마주할 결과는 모든 것을 잃었을지 모를지라도 나로 하여금 편안한 숙면을 줄 수 있을 것이야'라고 말이죠.


여러분들은 혹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것이 나로 하여금 빠져나가려고 할 때면 괜히 조급해지고, 화가 나진 않으셨나요? 그럴 때면 우리는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애쓰는 나를, 마치 바다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노인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머지는 그냥 물 흐르는 듯한 조금은 놓아주는 것을 어떨까요. 화, 불안감이 치밀어 오를 때면 '나는 이 일이, 이것이, 이 사람이 소중하구나, 잃고 싶지 않을 만큼.'이라고 되새겨보는 거예요. 그리고 '나한태 왜 이런 시련이 오는 거야?'라기보다는 '지금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라고 질문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다면 우리도 노인처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최선을 다한 우리는 좀 더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지 않을까요, 좀 더 나은 내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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