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도 아픈 사람에게

해님 있는 날이 외로운 사람에게

by 정귤


유치원 버스 타러 가는 길. 현관문을 나서면 하리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오늘은 해님이 조금 있네."

"오늘은 비가 안 오네."

"오늘은 날씨가 진짜 좋다. 그치 엄마?"

항상 날씨 이야기로 수다를 시작하는 하리다. 어제는 비가 왔는데 오늘은 햇빛이 쨍쨍하다.

"엄마, 오늘은 해님이 쪼금만 있네."

어제 비가 와서인지 정말로 오늘은 조금 덜 더운 것 같다. 해님이 쪼금만 있다는 하리 표현이 어찌나 적절하고 귀여운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렇네~ 근데 하리야. 하리는 해님이 많이 있는 날이 좋아 비 오는 날이 좋아?"

"어... 해님 있는 날이 좋아!"

"왜?"

"어... 비는 떨어지니까 맞으면 아프니까."

'비가 아프다... 떨어지는 빗방울도 아프다니... 하, 그럴 수 있구나. 어떻게 아이들은 이런 말을 할까?' 하리의 대답이 내 머릿속에 비가 되어 뚝뚝 떨어졌다.






하리가 해님 있는 날이 더 좋다고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내가 느낀 '해님 있는 날의 외로움'을 모르는 순수하고 밝은 어린아이 모습 그 자체이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해님 있는 날'에 외로웠다.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나 비가 내리는 날은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중충한 날씨에 물들어 모두 같은 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님 있는 날은 나만 홀로 다른 기분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맑은 하늘 아래 다들 웃으며 여기저기 즐거운 발걸음인데 나는 외롭고 쓸쓸했다. 해님 있는 날은 소풍 가는 날, 어린이날, 방학, 운동회, 생일 같은 날이었다. 생기가 넘치고 왁자지껄한 풍경이 어울리는 날들. 나는 그런 날 좀 더 외로웠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때때로 나만 홀로 다른 기분을 느끼는 것. 그것은 실제로 내가 좀 다르게 자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크면서 점점 알게 되었다. 소풍 가는 날, 어린이날, 방학, 운동회, 생일같이 해님 있는 날엔 아빠가 꼭 술을 먹었다. 늘 가난했기에 특별한 날에도 도저히 해줄 것이 없었던 아빠는 술을 먹어야만 낼 수 있는 이상한 용기를 냈다. 동네 슈퍼나 문구점에서 외상을 하여 나의 해님 있는 날들을 챙겨주려고 했다. 그리곤 평소보다 더 술을 많이 먹고 보란 듯이 거하게 취해서 술주정을 했다. 마음처럼 해주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속상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그 화는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도착했다. 자기 자신에게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답답한 분노가 약하고 어린 나에게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말이다. 언제나 상처와 폭력은 아빠의 마음 안에서 출발해서 내 마음 안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는 해님 있는 날에 더 많이 욕을 듣고, 맞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런 날, 유난히 화창한 날 조금 더 쓸쓸하고 아프다. 어버이날이거나 가정의 달이거나 아빠의 생일이거나 하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오늘 하리가 그 뒤를 잇는 명언을 내게 남겼다. 비는 떨어지니까 맞으면 아프다고 했다. 작은 빗방울도 아플 수 있다. 꽃으로도 빗방울로도 맞으면 아픈 것이 아이고 어른이고 사람이다. 나는 퍼붓는 비를 맞아본 사람이라 작은 빗방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되는가? 나는 꽃을 받는 인생이 아니었다고 꽃으로 때려도 괜찮은가? 사랑받지 못했다고 사랑 주며 살지 못하는가? 그렇지 않더라. 나는 더더욱 꽃으로도 빗방울로도 때리는 사람이어선 안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나는 비를 막을 수도 햇빛을 막을 수도 없는 사람이지만 비가 내릴 때 쉬었다 갈 수 있는 처마 밑이 되고 싶다. 뜨거운 햇살 아래 시원하게 부는 바람 한 점이 되고 싶다. 빗방울도 아픈 사람에게, 해님 있는 날이 외로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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