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허기를 채우려면

by 정귤


얼마 전 하리 유치원에서 부모교육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랑 듣고 왔다. 옆사람을 자녀라 생각하고 실습해보는 방식으로 교육은 진행되었다. 남편과 마주 앉아 서로 눈을 맞추고, 딸 하리라 생각하며 "하리야~ 하리야~" 불러보았다. 실습 중인 부모들 곁에서 강사가 내레이션을 했다. "엄마 나 좀 봐주세요~ 나 좀 사랑해주세요~ 나 배고파요~"라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맺혔다. "배고파요."라는 말 때문이었다.


하리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식사시간마다 거의 밥은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른 간식거리로 배를 채우려고 한다. 그때마다 배고프다는 말을 하는데, 밥은 안 먹고 간식만 찾는 모습에 어떨 때는 배고프다는 말만 들어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강사의 "나 배고파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하리의 목소리로 들렸다. 배고프다는 표현이 진짜 배고파서 먹을 것을 찾는 소리가 아니라 어쩌면 내 사랑과 관심이 고팠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마음이 들어 울고 말았다.


그날 부모교육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자세를 낮출 것, 성을 빼고 이름만 두 번 불러주는 것이었다. 허리를 낮추고 무릎을 구부려 키가 작은 아이의 눈높이로 내려가는 것, 화난 목소리로 급히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작고 부드럽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 사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많이 들어본 내용이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부모들은 그렇게 자라지 못했고 그렇게 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나도 그랬고.


배고프다는 표현을 마음의 허기로 본다면 아이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수많은 다 자란 어른들도 여전히 배고프고, 허기지고, 공허해서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쉽게 잠들지 못하고, 쉽게 참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과식 또는 폭식으로, 술로, 쇼핑으로, 게임으로, 도박으로, 사람으로, 섹스로 채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결과는 배부른 배를 부여잡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빈 배를 두드리며 공허하다. 다시 허기지다. 채워지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배고프다고 착각하고 배달 어플도 켜보고 sns에도 들어가 본다. 드라마나 예능을 틀고 음악을 들어도 본다. 사람을 찾아도 보고 무엇을 사기도 한다. 그런데 만족스럽지 못하다. 후회한다. 답답하다. 공허하다. 우울하고 슬프다. 왜 그럴까?


나는 배고픈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과 쉼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나는 사랑이 필요해. 관심이 필요해. 쉼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불편하고 어색한 것이다. 나약한 것 같고 부끄러운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렇다 하면 도와주고 싶지만 내가 나 스스로 사랑과 관심과 쉼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답은 강사의 말처럼 "눈높이"와 "이름"에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감정과 내 마음에도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긴장과 불안을 잠시 낮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급히 다그치지 않고 천천히 부드럽게. "너 지금 사랑받고 싶구나. 너 지금 관심이 필요하구나. 너 지금 쉬고 싶구나."






아빠는 마음의 허기를 술로 달랬던 사람이다. 슬플 때도 화가 날 때도 억울할 때도 우울할 때도 술로 채우며 살아온 것이다. 술은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을 하는 이상한 용기를 준다. 그것이 사랑 고백이기도 하고 사과이기도 하는 모습일 때도 있겠지만 내가 아빠에게서 본 용기는 미움과 증오, 욕설과 폭력이었다. 마음의 허기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나'로 먼저 채우지 않고, '남'에게서만 찾으니 평생 배고팠다는 걸 이제 조금 알겠다. 어린 시절의 나는 보통은 아빠에게 화가 나고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빠가 불쌍했다. 사랑 "받지" 못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랑 "하지" 못해서 괴로운 삶을 사는 아빠를 느낄 때에 사무치게 불쌍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힘들었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빠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빠와 떨어져 살고 있는 현재. 나는 지금도 아빠를 다 용서하지 못하고 다 사랑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괴롭게 살지 않는다. 아빠를 통해 태어난 나를 사랑하며 살기로 스스로 결정했을 뿐이다. 사랑받기보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내가 먼저 내 마음의 허기를 잘 다스려야 한다. 눈높이를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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