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뒷모습을 볼 때

by 정귤


길을 걷다 보면 유독 내 눈길이 가닿는 것들이 있다. 노란 아이들이 병아리같이 걷는 것을 볼 때, 아주 작은 이름 모를 꽃이 돌 틈 사이에서 당당하게 고개 내민 것을 발견했을 때, 꽉 차지 않게 손톱만큼이라 더 매력적인 초승달을 올려다볼 때, 내 두 눈동자 가득 감격이 차오른다. 이보다 더 내 시선이 오래도록 머무는 풍경이 있는데, 아빠와 딸의 다정한 뒷모습을 볼 때에 그렇다. 추운 겨울 두터운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반팔을 입은 듯한 기분에 휩싸이지만 그 따뜻하고 낯선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곤 한다. 특히나 남편과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 그 따뜻하고 낯선 아름다움 앞에서는 더더욱.






나에게 아빠는 다정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아빠와 떨어지기 전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이 어째서 바람이 아니라 해님이라는 걸까, 사랑이 그토록 따뜻하고 뜨거운 것이어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까지 한다는데 내 삶은 왜 이토록 차갑게 불어닥치기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이해한다. 머리가 아닌 삶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랑은 바람 같은 것이 아니라 해님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의 해님 같은 사랑이 나를 변하게 했고, 엄마가 된 나의 사랑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아빠랑 살면서 가장 억울했던 점은 왜 '내가 변해야 하는가'였다. 지난 삶 속에서의 고난을 말하자면 책 한 권도 거뜬하겠지만 진짜 답답하고 힘들었던 건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화의 주체가 '아빠가 아닌 나'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바뀌면 상대도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 믿었었다. 엄마랑 나는 우리가 조금만 더 참고 견디다 보면 아빠도 바뀔 거라고, 나이가 들수록 꺾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술을 먹는 횟수도, 술주정과 폭력의 강도도 점점 더 세져만 갔다.


상담 프로그램 같은 것을 보면, 진짜 변화가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변화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곤 한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변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을 본다. 우리 집도 그랬다. 아빠는 그냥 그대로였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바뀌면 아빠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욕심이고 내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술중독과 폭력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변화는 내 편이었다. 내가 당연히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이었다. 변화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얼마나 악하고 나에게 영향을 주는지와도 관계없이, 내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고 상처를 회복하며 앞으로의 삶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바뀌는 것은 가치 있고 중요하다. 처음에는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억울했지만 아빠를 핑계 삼아 불평하는 삶이 더 억울하다는 것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남편이 하리 키에 맞춰 자세를 낮춘 뒷모습을 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왜 나는 아빠와 딸의 다정한 뒷모습을 볼 때 낯설었는지를. 나의 아빠는 나에게 맞춰 걷는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의 자세는 나보다 위에 있었고, 혼자 걸었다. 아빠는 매서운 바람처럼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평생 춥게 만들었던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 자신도 스스로 택한 혼자 걷는 그 길이 춥고 외로웠을 것이다. 사랑은 내가 먼저 낮추는 것이다. 고집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기만 한다면 절대 다른 이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 너를 이해해보겠다고 자세를 낮추고,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들어줄 때에 해님이 떠오를 거다. 사랑은 따뜻하고 다정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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