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깨어있는 것 같은 밤에

by 정귤


밤.

캄캄한 밤.

모두가 잠들고 나만 깨어있는 것 같은 밤.

나는 그런 밤이 무서워 해 뜨는 아침을 기다리면서도, 온몸 가득 휘감는 두려움과 외로움 속 홀로 된 밤이 익숙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집에서 쫓겨나곤 했다. 아빠가 술을 먹고 잔뜩 취한 날이면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싸움이 나거나 누군가 다치거나 경찰이 오거나 뭐 항상 그런 식이었다. 술에 취한 아빠로부터 내가 당한 여러 다양한 고통 중 가장 잦았던 건 '쫓겨나는 것'이었다. 아빠가 당장 나가라고 욕을 하며 위협을 해서 맨발로 나가다시피 뛰쳐나가면 철컥, 문이 잠겼다. 더운 계절에는 밖에 서있다 모기에 뜯겼고 추운 계절에는 슬리퍼 사이로 튀어나온 발가락을 잔뜩 움츠린 채 오들오들 떨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엄마랑 나랑 둘이서 참 많이도 쫓겨났다. 보통은 문 밖에 잠시 서있다 다시 들어갔지만 아빠가 잠들어버리면 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집에서 가깝고 그나마 안전한 교회로 갔다. 그 당시에는 교회에 지하실이 있었는데 언제든 기도할 수 있는 기도방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 엄마랑 같이 기도방에 숨어 자고 있는데 밖에서 문고리를 세차게 흔드는 소리가 났다. 아빠가 우리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아빠가 갈 때까지 숨도 쉬지 않았던 그날을 생각하니 지금도 털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다. 나는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공포영화를 찍어봤는데 뭐하러 굳이 찾아서 보나?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쫓겨날 때가 대부분이었기에 핸드폰이나 지갑은 물론이고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나갔다. 멀리 갈 수도 없었다. 행여라도 아빠가 문을 열어 찾을 때에 내가 없으면 그날은 잠은 다 잤다고 보면 된다. 나가라 해서 나갔더니 찾을 때 없으면 없다고 난리였으니 집 근처에서 대기모드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쫓겨날 때의 내 마음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가기 싫은 마음이다. 주로 늦은 밤에 쫓겨나니 밤중에 나가는 것이 무섭고 싫었다. 갈 곳도 없고 혹시 쫓겨난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부끄럽고 겁이 났다. 또 다른 마음 하나는 차라리 잘됐다는 마음이다. 잠시라도 술 먹는 아빠 모습을 안 봐도 되니까, 상스러운 욕 안 들어도 되니까, 찌든 술냄새로 가득한 집구석에서 나갈 수 있으니까, 잠시라도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쫓겨났을 때 나는 오롯이 혼자니까.






가정폭력으로 인해 아빠랑 분리되고, 나는 결혼을 해서 남편과 아이들과 잘 살고 있다. 쫓겨날 일도 술냄새를 맡을 일도 전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밤이 무섭고 두 가지 마음속에 갈등하며 산다. 하나는 하기 싫은 마음, 사랑하기 싫은 마음, 놓고 싶은 마음, 편하고 싶은 마음, 상처받기 싫은 마음, 숨기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하나는 나를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기어코 해내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인내하는 마음, 어려움과 고난을 피하지 않는 마음,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마음이다. 내가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환경에서 나는 '차라리 잘됐다'는 마음을 선택하며 그 시간들을 지나왔다. '나는 불행하다'는 어두운 생각을 버리고 또 버리고, 오롯이 혼자일 때 '나는 행복하다. 행복할 거다.' 말하고 또 말하면서.


쫓겨났던 수많은 날들의 밤. 그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달이 있어서다. 달이 어둡고 캄캄한 그 넓은 하늘 위에서 홀로 오롯이 떠있어 준 것이 나에게 위로였다. 나는 어두운 밤이 무서운 겁쟁이지만 달처럼 기꺼이 어두움 가운데 머무르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하리가 밤하늘에 뜬 달을 보고 케이크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케이크처럼 둥근달이 부서져버릴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달을 걱정하는 당차고 예쁜 마음 앞에서 나는, 스스로 대답했다. 달이 케이크처럼 보일 순 있지만 부서지지 않는다고, 엄마도 달처럼 단단하게 살아내서 네가 가는 길 밝게 비춰주겠다고.


모두가 잠들고 나만 깨어있는 것 같은 밤은 두렵고 외롭다. 나는 그러한 시간을 지나왔고 지나가고 있고 또 올 것을 안다. 밤이 지나면 새로운 해가 뜰 것도 안다. 어둠이 가려서, 안개가 가려서 우리를 흔들리게 한다. 빛을, 무지개를 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된다. 어두운 밤, 홀로인 이 시간.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해가 떴을 때 부끄러워하지 않을 나를 준비한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고 떨리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꺼내어 쓴다. 빛 가운데 드러날 때 어두움은 사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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