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웠는데 혜리가 내 배 위로 올라온다. 내 볼에 자기 볼을 막 비비고 입을 벌려 내 얼굴 여기저기에 침을 묻힌다.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 하는 짓이 꼭 새끼 강아지 같다. 그러다 갑자기 내 윗옷을 올려 가슴을 한번 봤다가, 내 표정을 한번 살피고는 묻는다. "엄마 아파?"
둘째는 18개월까지 모유를 먹었다. 지금 21개월이니 젖을 끊은 지 4개월이 다 되어간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밤마다 저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아 아직도 '엄마 쭈쭈'에 대한 미련이 남았나 보다. 엄마가 아픈지 한번 묻고 힘차게 올렸던 옷을 스르륵 내리는 것을 보면 어쩐지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든다. 처음 계획은 두 돌 때까지 모유수유를 하려고 했으나, 이빨이 많이 나면서 젖을 빨 때 세게 깨물기 시작했다. 상처가 아물 틈 없이 수유를 계속하니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단유를 결심했다. 젖을 끊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18개월 동안 먹이던 젖을 한 번에 끊는 것은 혜리도, 나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한날은 내 품에 안긴 혜리한테 말했다. "혜리야. 엄마도 우리 혜리한테 계속 쭈쭈 주고 싶지만 여기가 너무 아파서 이제 못 줄 것 같아. 그동안 많이 먹었으니까 괜찮겠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혜리의 처진 눈썹이 가엽게도 더 축 늘어졌다. 그날 이후 젖을 먹고 싶어 하다가도 "엄마 아파?"묻고서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단유에 성공했지만 지금도 밤이 되고 졸릴 때면 엄마 쭈쭈를 찾는 혜리를 보며 생각했다. 나 또한 여전히 버리지 못한 미련 같은 것은 없는지,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것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모유는 엄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이다. 아기는 그 생명을 받아먹고살다가 때가 되면 엄마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게 된다. 육아의 최종 목적도 독립이라고 하지않는가. 어찌 이것이 모유와 아기만의 문제이겠는가?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들에겐 모유와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부모, 가족, 친구, 애인, 돈, 지식, 능력, 권력, 명예, 인기, 사랑, 인정 등...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바로 그렇다. 잠이 오고 안정이 필요할 때 엄마의 품에 파고드는 아기처럼 삶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나 쉼이 필요할 때 우리는 의지할 무언가를 더 갈망하며 찾아 헤매지 않는가. 그리고 그때 비로소 삶은 철저히 혼자인 것을 깨달을 때에, 몰려오는 두려움 앞에서 그동안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가. 과연 그것들이 정말 생명력이 있는 것인지, 나를 살게 하는 것이 맞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완전히 젖을 뗐는가? 부끄럽지 않은 독립을 했는가? 나는 여러 관계 앞에 지쳐 때론 홀로 있는 것을 간절히 바라며, 홀로 온전하기를 꿈꿨지만 사실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부모로부터, 나의 과거와 오랜 습관으로부터, 사람들을 향한 기대와 인정으로부터, 미움과 상처로 범벅된 굳은 마음들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 가장 좋은 핑곗거리니까. 내가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고 소리치고 싶었으니까.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스스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으니까.
내겐 아빠가 가장 좋은 핑계였다. 아빠는 내 삶의 걸림돌이라 말하며 다녔지만 실은 내가 떼어내지 못하고 계속 붙이고 다닌 혹이었다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인 것 같다. 걸림돌이었다면 치우고 갔으면 되었을 텐데 난 그러지 못했다. 아빠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아빠 때문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고, 아빠 때문에 내가 갈 길을 못 가고, 아빠 때문에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믿었다. 나의 실수와 부끄러움과 연약함, 부족함을 아빠라는 혹 안에 집어넣고 살아온 거다. 그토록 아빠를 미워하고 아빠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아빠로부터 독립하지 않았던 젖 먹이었던 거다. 아빠 뒤에 숨으면 지긋지긋하게 못난 내가 잠시 가리어질 수 있다고 착각했던 거다. 자기 두 눈만 가리면 몸 전체가 보이지 않는 줄 아는 어린아이의 숨기 놀이처럼.
독립. 그것도 부끄럽지 않고 아름다운 독립을 해야 한다. 끊지 못해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닌 생명을 흘려보내는 모유가 되기 위해서 핑계 대고 있던 것들로부터는 독립을, 가리고 있던 것들과는 마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1개월 짜리도 꾹 참고 해내는 것을 훨씬 많이 산 나도, 엄마가 된 나도 해내야 한다. 또 나는 작고 작은 아이에게서 커다란 지혜를 배우고 말았다. 내가 먼저 아름다운 독립을 이룰 때 나의 딸들도 아름답게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그려보면 벌써 눈물이 차오르지만 우린 누구나 철저히 혼자다. 당당하고 아름다운 독립을 이뤄낸 '혼자'들이 저 하늘을 바라보며 손잡고 함께 걷는 세상을 그려보면슬픔은 다시 희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