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이야기다. 머리에 땜빵이 생겼던 어느 날인 것 같다. 필통을 열었는데 꼬깃꼬깃 접힌 쪽지가 들어있었다. 엄마의 쪽지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엄마는 종종 쪽지나 편지를 써서 수저통이나 필통에 넣어주곤 했다. 엄마의 쪽지를 받는 날은 주로 아빠와 싸운 뒤였다. 잠깐, 싸운 것이 맞나? 아빠와 내가 서로 싸운 게 맞나? 아빠와의 일들을 떠올리면 아무리 찾아봐도 적절한 표현이 없다.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어떨 때는 '폭력', '가정폭력', '술주정' 이런 단어들이 맞는 것 같다가도 단어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면 여전히 아프고 섬뜩한 나는,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게 과연 맞는가 하는 것이다. 과거 아빠로부터 받은 상처, 그날의 기억들은 소나기 같다. 소나기는 갑자기 들이퍼붓다가 곧 그치며 번개나 천둥, 강풍을 동반한다. 아빠가 딱 그랬다. 술을 먹을 때 갑자기 들이퍼붓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 술이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번개나 천둥, 강풍처럼 욕설이나 폭력, 상처 같은 것이 뒤따랐다.
엄마의 쪽지를 받기 며칠 전 사건이 발생했다. 내 방에 있던 나는 안방에서 아빠가 엄마를 향해 내뱉는 욕설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아빠를 말리다 한 대 맞았다. 아빠가 맥주병으로 내 머리를 내리쳤는데 머리 왼쪽 부근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밤이었던 터라 급히 응급실에 가서 꿰매었다. 덕분에 머리에 땜빵이 생겼다. 지금도 손으로 더듬어 찾으면 빈 부분이 만져진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엄마가 나에게 쓴 쪽지인 거다. 자세히 다 기억나진 않지만 앞뒤로 빽빽이 적힌 내용의 핵심은 "미안하다"였다. 아빠한테 상처받은 내 마음을, 땜빵 난 자리의 한 부분을 엄마가 그렇게 메워주곤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생은 메워야 할 땜빵을 계속해서 만나는 일인 것 같다. 물론 아빠로 인해 생긴 땜빵은 어쩔 수 없거나 당연하거나 이겨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왜 그런 일을 당했으며 왜 그런 아빠가 내 아빠인지 아직도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살기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라보며 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기억과 상처가 아니라 내 현재와 사랑이다. 내 딸들에게 나는 내 땜빵을 대물림하지 않고 내 선에서 끊어버렸다. 내가 땜빵했으니까 이제 됐다.
한번 생긴 땜빵은 그 어떤 것으로도 완전히 깔끔하게 메울 순 없겠지만 작은 위로들, 따뜻한 마음들로 아주 작게, 아주 연하게 메워가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내 아픔을 알았던 단 한 사람, 엄마의 쪽지처럼. 요즘, 다시 메워야 할 새로운 땜빵을 만나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하리 손을 잡고 걷다가 나도 모르게 이 작은 아이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물었다.
놀랍게도 이 아이가 나의 정곡을 찔렀다. 내가 무슨 뜻으로 물었는지 모르는 아이지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맞다. 나는 용기가 없었던 것이 맞다. 아이는 나의 빈 부분을 메워준다. 용기를 준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 뒤로 선풍기를 켜주고 아이들에게로 가는 남편도 나를 메워주는 사랑이다. 빗자루질을 하던 아파트 환경미화원 이모님이 빗자루를 내려놓고 내 옆으로 다가와 어린이집 가는 둘째를 같이 배웅해주시는, 웃으며 흔들어주셨던 그 손 또한 나를 메워주는 사랑이다. 큰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내 삶이 작은 위로들과 따뜻한 마음들로 채워질 때 나는 내 머리에 난 땜빵까지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고 소소한 것에 크고 놀라운 것이 담겨있다. 나도 이제 작은 위로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나간다. 땜빵 때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