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가 종이 하트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가만히 보니 하트 크기가 얼굴만 하게 크고 종이 재질도 두껍다. 색종이가 똑 떨어져 스케치북 한 장을 부욱 뜯어 만든 하트였다. 아빠가 접어 준 흰색 종이 하트를 하리가 분홍색으로 가득 칠해서 유치원 가방 안쪽에 소중하게 넣어둔다. 자기를 쏙 닮은 사랑스러운 하트를 친구들한테도 보여주겠다고 가방 안에 넣는 모습을 지켜보다 내 마음에도 어떤 뜨거운 색이 메워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색이 없던 내 삶에 여러 가지 알록달록 색깔들이 칠해지기 시작한것은 내 아이들을 만나고부터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해서 또는 어떤 어려움을 만나서 어느 날 갑자기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태어나보니 가난했다. 아빠는 처음부터 성실히 일하는 가장이 아니었는데, 대장암에 걸리고부터는 '암' 뒤에 숨어서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우리 집의 가장은 엄마였다. 지금은 가사도우미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땐 파출부라는 말을 주로 썼다. 부모님 직업을 써내야 할 때면 아빠는 무직, 엄마는 파출부라고 썼던 것이 기억난다. 엄마는 파출부로 일하면서 나와 동생을 키우고 아픈 아빠도 간호했다. 아빠는 수술 이후 재발 없이 건강을 되찾았고,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잠시 멈췄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본모습으로 돌아온 아빠를 보며 가족들은 오진이 아니었을까 입을 모아 말했다. 아프면서 잠시 순해진 아빠를 보며 숨 고르기를 했던 엄마와 나는 다시 힘들어졌다.
아빠가 암 수술을 받던, 동생이 태어난 그해 2001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생겨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우리 가정의 경제적인 어려움에 단비 같은 것이 내렸다. 늘 단칸방에 살던 우리 가족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두 칸짜리 임대주택에 살 수 있게 되었고, 나는 학교에서 급식비 같은 것을 지원받았고, 병원비 부담을 덜게 되어 아프면 병원도 선뜻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빠는 이전보다 더 술을 많이 마셨다. 이곳저곳에서 외상을 하는 등 분수에 맞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너무 지나치게 많은 사고를 쳤다.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데 아빠로 인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계속되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번 돈을 집에 보탰다. 아니 거의 다 줬다. 이미 아빠가 내 월급날이면 본인의 계산 하에 발 빠르게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었으니. 술값, 외상값, 사고 수습 값 등의... 가난과 술, 폭력은 참 사이좋은 친구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가난하니 술을 먹고 술을 먹으니 계속 가난하더라. 가난과 술이 같이 있는 곳에 상처와 아픔이 뿌리내리더라. 그것이 자라고 자라 폭력이라는 가지를 내고 그 나무에서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의 열매가 나는 걸 보았다. 그 속에서 자란 나는 색이 없었다. 밝은 색이 되길 원했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나는 색이 없는 것이 편하고 그것이 나에게 어울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 나를 진짜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품에 안고나서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은 지난 세월을 나 혼자 외롭게 버틴 것이 아니라, 색이 없는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끝없이 저마다의 색을 칠하며 사랑을 나눠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한 생명이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는지를 이제야 알아가고 있는 나다. 내가 아픔 속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있을 때 나를 빨간색으로, 노란색으로, 초록색으로 각자의 색깔로 칠하며 도와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랑이 지금 나를 있게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만의 색을 내며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불편하고 어둡고 마음 한구석이 저릿저릿해지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 것은 나도 이제 붓을 들고 색을 칠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내가 앞으로 이야기할 내용은, 내가 자랑할 것은 약함이요 고난이요 상처다. 색종이든 스케치북이든 휴지든 무엇으로 접었든지 하트는 하트가 된다. 나는 재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수저로 계급을 나누는 사회에서 나는 내내 좌절했다.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억울했고 분했다. 나는 이 사회에서 흙수저도 아닌, 수저가 되지 못한 곧 부러질 이쑤시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재질이 아니라 '쓰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귀하게 쓰이는 수저도 있고 천하게 쓰이는 수저도 있다. 금이라서 귀하고 흙이라서 천한 것이 아니라 그 수저를 쓰는 주인의 쓰임에 맞게, 주인에 손에 자주 쓰이면 그걸로 수저는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재질에신경 쓰고 싶지 않다. 깨끗하고 기특하게 쓰이는 수저가 되고 싶다. 그렇기에 약함도 고난도 상처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하트를 가방에 넣고 유치원에 간 하리는 무엇을 자랑했을까? 아빠가 접어준 것이라고 자랑했을까? 하트 자체를 자랑했을까? 무엇이 되었든 앞으로도 그렇게 사랑을 자랑하며 사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을 자랑하며 살고 있나? 무엇을 자랑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이 나를 자랑스럽게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가 금수저가 아닌 것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 여유롭게 텅 빈 금수저보다 주인 손에 들려 바삐 움직이는 깨끗한 흙수저가 되겠노라 용기를 내어본다. 나도 마음속에 고이 접은 하트 하나 넣고 손에는 붓을 들고 색을 칠하러 갈 테다. 지난날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