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듣는 말과 하루를 시작할 때 듣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그래서 나는 잠자리에 누워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하리 볼에 뽀뽀를 했다.
"엄마 보고 싶었어."
하리가 나를 안아준다.
초콜릿 한 조각을 입안에 넣었을 때처럼 마음 가득 달달한 감동이 전해져 온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사랑으로 힘을 얻는다. 아이의 말이 내 귓가를 통과해 눈과 마음으로 쏟아진다. 사랑과 행복으로.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했더니 엄마를 보고 싶었단다. 이렇게도 완벽한 대답이 어디에 있을까.
아빠는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저주를 퍼붓곤 했다. 아침에도 술에 취해 있었으니. 매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2-3번은 술을 마셨다. 심한 날은 하룻밤을 꼬박 지새워마셨으니 학교 가는 아침에도, 출근하는 아침에도 나는 이미 하루를 살아갈 힘을 다 잃은 채로 집을 나섰다.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아침, 내가 아빠에게 들었던 말은 이랬다.
"가다가 차에 받혀 뒈져라."
아빠의 말이 내 귓가를 통과해 눈과 마음으로 쏟아졌다. 분노와 상처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차에 부딪히는 것'과 '죽는 것'만 기억난다. 지금에서야 나의 잘못을 꾸역꾸역 찾아본다면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의 말에 말대꾸를 한다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아서일 거다. 술에 취한 아빠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고 욕이 난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술에 취한 아빠가 원하는 것들은 술 심부름이거나 이유 없이 상대를 괴롭히기 위한 것들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아빠를 달래고 이해하고 받아주는 날은 그럭저럭 잠은 잘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은 꼴딱 밤을 새웠다. 밤새도록 아빠 술주정에 들들 볶이면서. 나는 너무나 지극히 정상적이어서, 아무리 어려도 이성과 감정이 살아있는 사람이어서 말대꾸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빠는 내가 달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받아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학교 가는 길 곳곳에 신호등이 있고 차가 지나다녔다. 겁에 질린 나에게 차들이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너는 오늘 나한테 치여서 죽는다."
'아빠 말처럼 나는 오늘 학교를 가다가 차에 받혀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도 되는 사람이구나.'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학교를 갔던 날. 그날 아침 등굣길에 만난 자동차들이 지금도 가끔 내 머릿속으로 달려올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내 입술의 말이 등원하는 아이들에게, 출근하는 남편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를 생각한다.
말한 대로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아빠의 말대로 차에 받혀 죽지는 않았다. 나는 이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눈과 마음으로 쏟아지는 것을 믿기로. 그것이 사랑일 때 사람은 산다. 그것이 상처일 때 사람은 죽을 수도 있다. 아빠의 말과 그 상처가 나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두려움에 울며 차를 피해 걸었던 어린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아빠의 저주와 상처는 내가 아닌, 아빠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빠는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을 그때 누구보다 자기가 죽고 싶었을 것이다. 가난과 현실의 문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불쌍한 자신의 삶 앞에서.
아빠의 눈과 마음에는 분노와 상처가 가득 차있었지만 내 아이들의 눈과 마음에는 사랑과 행복이 가득 차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차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아이들의 눈과 마음이 나를 향하고 있다. 내 시선과 마음도 아이들 속에 머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