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미술관 가는 길
오늘도 나는 빨간 버스를 타고 미술관으로 향한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내려 석파정으로 향한다.
학창시절, 결혼 전에도
과제를 하기 위해 미술관에 갔다.
스스로 그림을 보려고 미술관에 간 적이 없다.
결혼 후
생각과는 또 다른 세상에 방황할 때
우연히 미술관에 갔다.
그 떄 그 기억이 좋아 답답할 땐 미술관에 숨었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걷고 걷다가 전시 관람 중 시선이 머무는 작품 앞에서
오래도록 머물러 바라보았다.
동선에 방해되지 않도록
오래도록 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림은 말이 없는데
나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다시 한 번 해볼 용기를 주었다.
그 때 그 기운이 좋아서
요즘에도 내 시간엔 미술관으로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처음 그림을 자세히 알고 싶었던 계기는
호암 미술관에서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그림을 본 후 한국 회화를 자세히 알고 싶었다.
한국 회화 관련 책을 찾아 읽어보고
책 속에서 알려주는 감상방법을 읽으며 이렇게 그림을 볼 수 있구나 깨닫는다.
이 시기 읽었던 책 덕분에
수묵화 매력에 지금도 푸욱 빠져있다.
묵 하나로 다양한 명암을 나타내는 신비로움.
미술관에 가면 그림 해설사(도슨트)가 설명해주어도
나는 그 시간을 피해 그림을 감상한다.
설령 내가 생각한 해석과 다르더라도
온전히 내 시선으로 보는 것이 좋다.
혼자 관람을 하고 난 뒤 시간 여유가 된다면 그림 해설을 듣는다.
해설사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면
내 생각은 없고 설명 들은 이야기만 머릿 속에 남지만
먼저 본 후 설명을 들으면
내 생각 위에
그림 해설사 이야기를 한 겹 더 쌓아 올린다.
두 이야기가 함께 할 때가 좋다.
석파정을 산책하듯 휘 한바퀴 돌며 이 곳 저 곳 둘러보았다.
어쩜 이 곳은 비밀의 정원 같은 곳
마루에 앉아 햇살을 오롯이 느끼고
시원한 비가 내리는 날 정자에 앉아
빗소리 들으며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근사하겠다고 생각했다.
전시회에서
이중섭 황소 그림을 보았다.
황소가 나에게 곧 달려올 것 같은 그 기상이 그 기운이
그림에 가득 담겨있다.
이중섭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화에서
아빠는 잘지낸다는 말에
코 끝이 시끈
엄마에게 너희들 사진 보내달라고 전해달라는 말에서
코 끝이 시끈하다 눈물 샘이 터질 뻔 했다.
가족들이 얼마나 그립고 그리웠을지
나는 감히 상상도 안 되었다.
집에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밀리의 서재 추천 도서에
이중섭 관련 책을 발견했다 .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한
<참 좋았더라>
덕분에
미술관에 가는 길 마음 만큼
미술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기분 좋았던 하루였다.
조금은
다운되었던 마음이
그림을 보고
그 공간에 머물다
나오는 것만으로 해소된다.
고맙고 신기하다.
집에가는 길 입구에서 보았던 메세지가
마음에 머문다.
그래 나도
잘 지내고 있지.
내일도 다시 걸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