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명의 X를 떠나보낸 후, 내게는 후유증이 남았다.
바로 ‘추억 장소 기피증’.
내가 지어낸 말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깊이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했던 장소일수록 이 기피증은 극에 달한다.
마치 공황발작처럼 숨이 가빠오고, 그때의 기억과 함께 X가 떠오른다.
정말 마음을 다했던 사람과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여행은 우리의 마지막 추억이 되었고,
이제 그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연인이 되었다.
우리의 시간은 재개될 수 없는, 원본이 소실된 영화가 되어버렸다.
비행기를 기다리던 게이트에 서 있을 때도 나는 같은 후유증에 시달렸다.
퇴사를 앞두고 떠난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련이라기보다는, 잘 지내고 있을까, 새 사람과는 나와 달리 부침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장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추억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을 그리움으로 적신다.
사실 그리운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다.
한없이 맑은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던 모습.
그 감성에 빠지면 현재를 소홀히 하게 되기에, 나는 의식적으로 그 장소를 피한다.
피해야 할 곳은 점점 늘어난다.
그럴수록 나는 다시 나만의 장소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간다.
그 사람과의 추억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기억을 소환하는 공간을 외면하고 싶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새로운 장소들이 언젠가 내 마음을 채우고,
과거의 추억은 조용히 내 안에 묻히기를.